생애 가장 치열하고 충만했던 그 시간은 이력서의 ‘빈칸’이 됐다.
전업주부로 19년을 살았다. 1분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가정 살림을 책임지면서 세상 원리를 배웠고 사람을 이해하게 됐다. 소통하는 법,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 시간·조직·위기관리 능력 등 정치인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역량 모두 출산과 양육, 가사의 시간을 통해 익혔다.
그러나 정치의 길을 준비하며 이력을 써 내려가던 필자는, 펜을 멈춰야 했다. 19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필자는 19년간 단 하루도 일하지 않은 사람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무임금 노동을 비(非)가치 노동으로 치부하는 낡은 시대의 등식이 경력의 공백을 만들었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는 이런 세간의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돌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무급 노동’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에 수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고효율의 멀티플레이’라고. 돌봄 경력이 협동과 연대, 자기 조절과 갈등 관리 역량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럼에도 사회는 진화하는 돌봄, 가사 노동의 가치를 여전히 외면한다. ‘수입’을 목적으로 한 활동만을 경제활동 통계로 집계한다. 임금도, 인증도 없는 육아·돌봄·가사는 ‘경제’도 ‘노동’도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무급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약 491조 원(2021년 기준)에 달한다는 분석에도 이 거대한 수치는 정책에 편입되지 못했다.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라고 배웠다. 세상은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가르치면서 생명을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가정 내 일의 가치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놔둔 채 아이 낳지 않는 사회만을 질책해왔다. 문제는 아이를 낳지 않는 현상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며 돌보며 단단하게 쌓여온 시간을 ‘공백 혹은 단절’ 취급하는 제도와 구조에 있는데 말이다. 가사와 돌봄을 일로,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출산율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결과’일 뿐이다.
결과를 바꾸려면 해법부터 달라져야 했다. 필자의 생각은 지금 당장 가사, 돌봄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어렵다면 ‘인정’이라도 하자는 데 이르렀다. ‘서울특별시 경력보유시민의 가사 돌봄 노동 인정 및 권익증진에 관한 조례’를 대표 발의해 그림자 취급을 받았던 육아, 돌봄, 가사 노동을 제도 안으로 초대했다.
물론 가사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주목하는 ‘선언’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가시적 변화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손에 잡히는 변화를 만들려면 손에 쥐어지는 인증이 있어야 했다. 돌봄의 시간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시장 명의의 ‘경력인정서’를 발급하는 조항을 조례에 담았다. 가사는 여성의 몫이라는 편향된 시선에 갇히지 않도록 시민으로 대상을 넓힌 국내 최초의 조례를 만들었다.
이 경력인정서가 새로운 기회로 나아가게 하는 ‘입장권’이 되도록 경력 인정 이후 상담·교육·재취업·창업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조항도 포함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말한다. “서로 인정받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자아가 만들어진다”고 말이다. 돌봄 시간을 공백이 아닌 경력으로, 소중한 자산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제도의 문이 열리고 있다. 이 제도가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제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돌봄과 가사로 다져진 당신의 실력은 유효하다. 그러니 당신의 경력은 안녕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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