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의 세계는 지금] 다케이치 오판과 트럼프 日 패싱

다케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7일 국회에서 대만 유사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현직 총리가 대만 문제에 ‘존립위기 사태’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적 파장에 대한 야당의 질의에 대해 다케이치 총리는 이 발언을 “특별히 철회하거나 취소할 생각은 없다”고 답변했다. 중국 정부는 이 발언을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일 4개 정치 문서 정신의 위반으로 규정하면서 다케이치 총리를 맹렬히 비판했다.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소셜미디어에서 다케이치 총리의 “그 더러운 목을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라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동시에 중국은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限韓令)과 유사한 한일령(限日令)을 발동해 경제·인적 교류를 차단하고 있다. 이달 일본행 노선 5천548편 중 16%인 904편의 운항 중단이 결정됐으며 일본 영화 상영과 음악 공연 등이 예고 없이 취소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중일 갈등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다케이치 총리에게 우호적이다.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문제가 있다”는 답변보다 두 배 많았다. 특히 보수층과 청년층에서 대중(對中) 강경론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일본의 군사동맹국인 미국의 반응은 다케이치 총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르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시진핑 주석과 통화한 후 다케이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만 문제로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다음 날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일본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을 무시했다는 저팬 패싱(Japan Passing)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 일본보다 경쟁국 중국에 더 경도된 이유는 경제에 있다. 관세전쟁 이후 악화된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타협이 필요하다. 중국과 갈등이 격화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관세를 낮출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대두 수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농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정치적 고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중국을 자극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17일 한국이 중국·러시아, 대만해협·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중심축이라고 주장하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시사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오판했던 다케이치 총리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전략적 유연성에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이 자국의 사정에 따라 동맹국과 협의 없이 전략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섣불리 나설 필요는 없다. 중국이 한한령을 부과했을 때 미국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왕휘의 세계는 지금] ‘APEC 성공’ 한반도 평화 동력으로 활용

지난달 26일 아세안(ASEAN) 정상회의부터 이달 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이어진 외교 슈퍼 위크가 종료됐다. 이 기간 내내 이재명 대통령은 APEC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 한일, 한중 정상회담도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취임 5개월 만에 대규모 국제 행사를 잘 치러냄으로써 이 대통령의 국익중심 실용외교는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관세협상의 타결로 한미관계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제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압박 속에서도 이 대통령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했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한중 관계의 복원도 중요한 성과다. 11년 만에 성사된 시진핑 주석의 국빈방문으로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지속돼 온 경색 국면이 풀릴 기미가 나타났다. 서해 구조물 및 핵추진 잠수함 같은 갈등 요인이 있지만 한중 정상은 2009년부터 계속돼 온 한중 통화 스와프의 연장,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가속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한일 정상회담도 무난하게 치러졌다.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대일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강조함으로써 일본 총리의 교체가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됐다. 또 이 대통령은 다음 번 셔틀외교를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奈良)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본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주변 3강과 관계를 개선했지만 북핵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 구조 구축에는 실질적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8월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 역할을 부탁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일정 중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북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 최선희 외무상을 모스크바에 파견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접견하게 했으며 순항미사일도 발사했다.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도 난제다.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국제문제 담당 부총리가 APEC 정상회의에는 참석하는 기간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경제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2만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한 이후 러시아는 북한에 현금, 곡물, 석유 등은 물론이고 군사기술을 제공해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난이 완화됐다. 러시아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한 북한은 남북 회담은 물론 북미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확보됐다.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잘 끝났기 때문에 대러 관계만 복원하면 4강 외교는 완성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지지가 없이는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END 이니셔티브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다.

[이왕휘의 세계는 지금] 한미 관세협상, 동맹 강화 차원서 접근을

7월31일 한국이 미국에 3천500억달러를 투자하고 1천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및 에너지를 추가 구매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투자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아 미국은 아직도 관세를 15%로 낮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현금 출자, 대출, 보증의 세 가지 방식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현금 출자만 고집하고 있다. 양국이 이 문제를 해소하기 전까지 투자협정의 체결이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3천500억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의 80%를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외환보유고는 미국 국채, 모기지 채권(MBS), 정부기관채, 회사채 등 유가증권 및 예금, 특별인출권(SDR), 금, 국제통화기금(IMF) 포지션 등으로 구성돼 있어 단기간에 인출할 수 있는 자산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청했으나 미국 정부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 9월 초 미국 이민세관집행국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단속으로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에 급제동이 걸렸다. 이런 배경에서 3천500억달러를 투자하지 말고 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지 못했을 경우 발생할 대미 수출 감소분 125억달러를 부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낫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관세협상을 경제적 손익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현 정부는 한미 동맹을 미래형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키려 한다. 여기에는 안보, 경제, 첨단기술의 세 가지 기둥이 있다. 군사 동맹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 및 비핵화, 경제 동맹은 미국 최고의 ‘그린필드 투자국’, 첨단기술 동맹은 조선, 인공지능(AI), 반도체, 퀀텀, 원자력 협력을 각각 추구한다. 대미 투자는 경제 동맹을 구축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군사 동맹과 첨단기술 동맹에서 우리는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할 의제가 아주 많다. 따라서 투자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한미 동맹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상업적 합리성을 잘 준수해야 한다. 대미 수출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협상이 하루빨리 타결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수용했을 때 우리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감당할 수 있는 금액과 방식을 바탕으로 미국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지속해야 한다.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재계도 협조해야 한다. 국가 이익을 지키는 데 여야가 따로 없다. 이 문제가 정쟁화된다면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와 자신 있게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것이다. 여야 모두 우리 경제와 기업이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민관 협력도 중요하다. 현재 대미 수출 비중이 큰 기업은 관세 인상에 따른 매출 및 수익 감소로 고통받고 있다. 관세가 인하되기 전까지 정부는 기업에 보상하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관세 인하 효과를 먼저 누리는 유럽연합(EU) 및 일본 기업과 대등한 수준에서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왕휘의 세계는 지금] 미중 전략경쟁에 등 터지는 한국 반도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 증가했다. 이러한 성과의 최대 공신은 전체 수출에서 25.9%를 차지하는 반도체였다. 반도체 수출액이 151억달러로 27.1%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대미 수출은 어려워졌지만 주력 제품인 메모리 단가가 상승했으며 인공지능(AI)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수요도 탄탄했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 수출액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졌다. 미국의 대중 제재와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성장을 억누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 산업보안국은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반입할 수 있게 했던 포괄적 허가 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 10월부터 유지돼 온 사전 허가 없이 미국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특혜인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이 소멸된 것이다. 따라서 VEU 자격을 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산 장비를 중국으로 반입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산업보안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 관세도 당면한 리스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반도체에 200~3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시사했다. 미국으로 제조 시설을 이전하는 기업에는 관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단서가 달려 있지만 반도체 관세가 인상되면 우리 반도체 기업의 대미 수출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중국 반도체의 약진도 위협적이다. 최근 알리바바는 AI 칩을 독자 개발했다. 이 AI 칩은 성능에서 엔비디아의 최신 칩보다 뒤처지고 학습보다는 경량 추론 작업에 적합하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지만 이 제품을 생산한 파운드리가 TSMC가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중국 기업이다. 중국 기업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공정을 모두 책임져 알리바바는 미국의 수출 통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알리바바가 독자적으로 AI 칩을 생산한 결정적 요인은 엔비디아 H20에 대한 불만에 있다. 중국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인 알리바바는 AI 칩을 엔비디아로부터 대량 구매해 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가장 성능이 우수한 H100의 수출을 제한하는 대신 H20만 허용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H20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성능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7월15일 인터뷰에서 “중국에 최고의 제품, 차선, 세 번째로 좋은 제품도 팔지 않는다. 네 번째로 좋은 제품을 파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H20의 연산능력은 H100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H20으로는 대형 AI 모델 학습을 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엔비디아가 H20에 우회 접속 통로(백도어), 원격 종료(킬 스위치), 위치 추적 등의 기능을 숨겨 놓았다는 의혹이다. 엔비디아가 의혹을 즉각 부정했으며 이러한 기능이 사용된 사례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그렇지만 미국 의회가 중국이 제3국에서 엔비디아 칩을 우회로 수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수출용 반도체에 위치 추적·종료 기능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반도체보안법안을 7월 발의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은 인터넷·데이터 안전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근거로 H20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VEU 자격 상실이 보여주듯이 지난달 말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국의 일방적 조치는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수출은 물론이고 인공지능 대전환(AI Transformation)도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미국과 중국처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정부가 우리 기업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지금까지 알아서 잘했으니 앞으로도 잘해 나갈 것이라는 안이한 낙관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왕선택의 세계는 지금] 지정학과 시정학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격 외교 행보는 세계적으로 외교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실하게 깨닫게 만들었다. 패권국의 일방적이고 돌발적인 정책 결정이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가운데 각국은 자국 국익을 지키기 위해 전례없이 정교하고 전략적인 외교를 구사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한미동맹을 외교와 안보의 근간으로 삼는 한국의 경우 한미동맹 관리를 위한 정교한 외교는 국가적 생존과 번영에서 중대 과제다. 외교를 잘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국제 관계를 움직이는 힘의 배치와 지형, 즉 지정학적 요인을 제대로 읽어내야 외교적 전략과 전술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바로 타이밍이다. 지정학적 이해는 필수적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한 국제 정세 진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제 정세 관찰에서 시점에 따른 변화를 간파하고 그에 맞게 전략과 전술을 조정할 때, 즉 시정학(時政學)이 가미돼야만 외교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지정학은 그 자체로 정태적이고 고정적이다. 대륙과 해양의 지형, 국가 간의 군사적·경제적 배치, 역사적으로 형성된 동맹과 갈등 구도가 그 예다. 그러나 국제 정치는 유동적이다. 특정 사건이 발생한 시점, 경제 흐름, 지도자의 정치적 상황 등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외교는 이 두 요소―고정성과 유동성―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예술이다. 구조적 이해와 시기적 감각을 결합하지 못하면 효과적인 전략이 나올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 앞선 일본을 방문한 것은 타이밍 차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국 외교는 지정학적으로 분단 구조에 영향을 받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복합적인 압력을 받게 돼 있다. 이런 구조에서 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함으로써 미국이 강조하는 동맹 네트워크 관점에서 한국이 ‘협력의 고리’로서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둘째, 이 대통령은 취임 이전에는 반일 성향이 있다는 평가가 존재했던 만큼 파격적 일본 방문 일정은 한국 외교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경험이 있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의 면담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과거사 문제가 크게 거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제기한다. 과거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에서 유래된 갈등 요소가 미래에 발현하는 협력 요소를 가로막는 것은 현명한 외교가 아니다. 만약 과거사 해결을 전제로 일본의 양보를 압박했다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오히려 좁아졌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맥락에 따라 다루는 방식의 지혜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가 1998년 공동선언을 통해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한 것은 시대적 맥락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경우다. 반대로 과거 정부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과거사 정리와 실용적 협력을 병행하려 했지만 매번 실패한 것도 시기와 맥락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외교는 정확한 지정학적 진단 위에 순간을 포착하는 시의적절한 결단이 결합돼야 한다. 지정학이 외교의 지도라면 타이밍은 시계와 같다. 하나의 고지 점령 작전을 준비할 때 고지의 지형을 알아야 하지만 낮에 공격할지 밤에 공격할지에 대한 고려가 없으면 전투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다거나 지정학은 무의미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학과 시정학 두 가지가 맞물릴 때 비로소 외교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였다. 한국 외교가 앞으로도 신중한 진단과 시의적절한 결단을 통해 지정학과 시정학을 함께 활용하는 전략을 이어간다면 이재명 정부와 대한민국의 미래는 훨씬 안정적이고 활기찬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왕선택의 세계는 지금] 관세 협상, 국가 총력전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은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니다. 지구촌 차원의 통상 질서 변경이고 현실적으로는 질서 파괴의 의미가 강하다. 관세 협상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패권국가 지위를 악용한 강압 외교다. 인류가 오랜 세월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 구축한 문명의 세계가 갑자기 사라지고 야만의 세계가 부활한 것이다.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 가운데 영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이 미국과 합의를 마쳤지만 그 내용은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불균형적이다. 국제사회는 패권국으로 질서 유지 책임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미국이 오히려 저질 양아치 행태를 보이는 것에 경악하고 있다. 트럼프의 칼끝은 이제 한국을 향해 있다. 우리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도 고조될 수밖에 없다. 국내 일각에서 우리도 일본이나 유럽처럼 미국의 압박에 굴복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협상 실패를 기정사실화하고 협상 대표를 비난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어처구니없다. 지금은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거나 분열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국가적 총력전을 벌여 최상의 협상 결과를 위해 노력할 시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위기 상황을 보면 세 가지 총력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 총력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관세 협상은 국가적 이해가 걸린 사안으로 정치와 외교, 산업계, 언론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야당 인사들이 협상 실패를 기원하는 것처럼 우리 협상 대표를 저주하는 모습은 참담할 따름이다. 협상은 국익을 위한 전쟁이고 현재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아군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국면이다. 언론 역할 또한 결정적이다. 전쟁 중에 아군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정보나 해석을 무분별하게 보도한다면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언론이 허위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거나 우리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케 만드는 왜곡 보도를 한다면 이는 협상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 된다. 정부는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산업계를 대상으로 이번 협상의 어려움을 적극 설명하면서 ‘국가적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이것이 협상 성공의 선결 과제다. 둘째, 이번 관세 협상을 한미 관계 격상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모욕적으로 느껴지지만 한국과 미국은 상호 보완적 산업 구조를 지니고 있고 전략적 이해 역시 상당 부분 일치한다. 특히 미국은 제조업 부활과 무역수지 개선을 원하고 한국은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기술과 인재 확보가 절실하다. 두 나라가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면 상생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양국 산업 간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기술 협력, 인력 교류, 공동 투자 등의 포괄적 틀을 만든다면 한미 동맹은 이번 협상을 계기로 진정한 경제 동맹으로 격상할 것이다. 미국에 관세를 덜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를 더 많이 가져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이번 협상을 종합적 국력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이번 협상에서 총력전 양상을 보여주고 미국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낸다면 향후 5년 내에 대한민국은 세계 5대 경제 강국, 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그것은 단지 꿈이 아니라 도달 가능한 현실이다. 단기적인 관세 이슈를 넘어 장기적인 전략 목표를 포괄한 협상 구조를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번 협상은 대한민국이 선진 강대국에 진입하는 마지막 관문이 될 수도 있다. 협상은 마지막 구간에 들어섰다. 정부 협상단은 마지막 순간까지 냉정하고도 치밀하게 협상에 임해야 하고 국민은 우리 대표를 믿고 지지해야 한다. 정치권은 정파적 이익을 내려놓고 협력해야 하고 언론과 산업계도 국익 중심의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국가 총력전이 작동한다면 모두가 승리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확정적인 미래가 될 것이다.

[왕선택의 세계는 지금] 대한민국이 세계 6대 강국인가

최근 인터넷 인기 기사를 보면 미국 언론 매체인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발표한 세계 강대국 순위가 포함돼 있다. 조사 대상 89개국 가운데 대한민국이 6위로 집계됐다는 결론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1위 미국에 이어 중국, 러시아, 영국, 독일 다음에 한국이다. 이어 프랑스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조사 결과를 놀라움과 감동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100년 전만 해도 국력이 약해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고 광복 이후에도 세계 극빈국 가운데 하나로 약소국의 비애를 숙명처럼 안고 살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위 발표 내용을 자세히 검토하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어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검토할 내용은 이번 조사가 ‘최고 좋은 나라’ 순위를 매기는 것이고 강대국 순위는 하위 세부 항목 10개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강대국 조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다른 세부 항목으로 처리됐고 그쪽을 보면 현저하게 낮은 순위가 여러 개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혁신 추동력 5위를 비롯해 국력 6위, 문화 영향력 7위, 기업가정신 7위, 기민함 10위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삶의 질은 25위, 유산 32위, 사회적 명분 42위, 모험요소 51위, 사업 개방성 70위로 중하위권을 맴도는 분야도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모든 항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한국은 ‘최고 좋은 나라’ 18위로 집계됐다. 한국 언론은 세부 항목 중에서 국력 부문을 중시해 한국이 6위라고 강조했지만 전체적인 조사 맥락으로 보면 강대국 개념에는 종합순위가 더 가까운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국력 순위를 강대국 순위로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군사력 부문에서 한국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핵무기 보유 여부보다는 병력 규모나 재래식 무기 체계를 중시한 결과다. 경제력에서도 교역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이 강대국이지만 금융 자본이나 제도를 기준으로 제시하면 현저하게 다른 순위가 나올 수 있다. 외교 정책 분야나 지식 생태계, 복지 제도, 효과적인 소통 등은 전통적인 사고 기준으로 보면 강대국의 핵심 요소인데도 이번 조사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강대국 개념을 중시한다면 하드파워, 소프트파워, 스마트파워로 구분해 조사하는 것이 간결할 것이다. 하드파워로는 군사력과 경제력, 인구 및 영토가 중요하고 소프트파워에서는 문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정치제도가 중요하다. 스마트파워에서는 외교, 지식, 소통이 핵심 기준이다. 한국은 하드파워에서 금융 분야와 인구 및 영토 부문, 소프트파워에서는 ESG 분야에 약점이 있어 15위 이내에 들기 어려울 것이다. 스마트파워 부문에서는 문제가 더 많다. 외교 역량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자주적 외교 역량이 부족하다. 또 한국 지식인 다수가 여전히 대한민국을 모방국가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식 생태계가 허약하다. 소통 분야에서도 선진국 방식인 투명성, 쌍방향, 대화보다는 개발도상국 방식인 통제, 일방향, 인정투쟁에 급급하다. 30위 이내에 들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대한민국이 세계 6대 강대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도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보인다. 같은 조사에서 종합 등수 18위가 존재하는데도 우리 언론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굳이 강국 순위 6위에만 집중하는 것 자체가 과도한 인정투쟁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해 씁쓸하다. 다만 대한민국의 눈부신 국가 발전 역사는 이번 지표에도 충분히 반영돼 있다. 이번 조사에서 부족한 것으로 드러난 부분은 국가적인 합의만 이룰 수 있다면 짧은 시간 안에 극복하고 진짜 세계 6강이 될 가능성과 잠재성이 충분하다. 우리 언론이 그런 점에 주목한다면 세계 6강에 진입하는 시기는 더 빨라질 것이다.

[왕선택의 세계는 지금] ‘주한미군 감축설’ 과민 반응 유감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주한미군 4천500명 감축설은 예상대로 한국 사회에 상당한 충격파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주한미군 감축설이 나오면 안보 공백 상황이 발생한다는 불안감이 한국 사회를 휘감았다. 이번에도 다수 평론가는 안보 불안을 중심으로 논평과 해설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안보 불안 개념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단지 관성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다. 이런 접근법은 외교안보 개념의 근본 특성과 부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외교안보 문제는 국가 이익을 보전하고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항상 국가적 차원에서 손익 계산을 수반해야 한다. 그리고 국익의 주요 변수인 국제 환경과 국내 정치 여건은 항상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수시로 국익 손실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관성적이고 기계적인 대응을 한다면 낭패를 면할 수 없다. 2025년 상황에서는 어떤 계산이 필요한가. 우선 국제 환경을 점검해보자.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북 분단 구조와 북한의 선제 핵무기 타격 위협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역량은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고 북한과의 대화 단절로 평화적 문제 해결 가능성은 훨씬 작아졌다. 다만 핵무기 외에 재래식 군사력으로 비교하면 한국의 대북 군사적 억제 역량이 상당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구체적으로 말하면 패권국가 미국이 잠재적 도전국인 중국을 견제하는 양상도 중대한 관찰 요소다. 한국에 미국은 군사동맹국이고, 중국은 바로 옆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정면 충돌은 극도로 불편한 시나리오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주한미군 감축설이 나온 배경이나 전략적 함의를 분석하면 모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목표라면 주한미군 감축은 미국의 이익과 반대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말대로 주한미군은 중국의 심리적 내부 공간에 주둔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견제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대만해협 주변으로 투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중국 동북지역과 동부 지역을 방어하는 인민해방군 병력의 주요 경계 대상이 주한미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략적으로 모순 요소가 내재한다. 주한미군 규모를 줄이면 중국은 동부지역에 주둔하는 병력을 대만 방면에 투입할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진다. 모순적인 요소를 정리하면 주한미군 감축설은 미군 예산 절감에 초점을 맞춘 일반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섣부른 대응은 경솔하다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다. 설사 미국이 주한미군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 해도 우리가 안보 불안감에 빠져 허둥댈 필요는 없다.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를 통해 3천명 전후 병력을 감축하는 것은 지난 20여년간 주한미군 병력 운용을 고려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주한미군은 이미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3천명 정도의 병력을 수시로 순환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또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이 최근 세계 5위 수준으로 급등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한미 동맹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북한 핵무기 대응과 관련한 확장억제 프로그램을 견실하게 운용하는 것이고 재래식 군사력 분야에서는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한미군 감축설과 관련한 외교안보 현황 분석과 전략적 함의 분석을 정리해보면 주한미군 감축설 보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진지한 정책 검토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추정할 수 있고, 진지한 검토가 진행된다 해도 확장억제 분야에서 신뢰성을 높이는 조치와 병행한다면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커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긴밀한 협의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한 관찰 대상이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상당한 수준의 선진 강대국이 됐는데 과거처럼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말만 나오면 무조건 경기를 일으키는 행태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그런 태도는 미국도 좋아하지 않는다.

[왕선택의 세계는 지금] ‘조희대 음모론’과 대한민국의 품격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한국의 정치 불안 상황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5월1일을 계기로 상황은 또다시 달라졌다.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2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다. 중요한 선거를 한 달 정도 앞에 뒀다면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재판도 선거 이후로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행보는 의도적인 선거 개입으로 해석하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이 공정성과 중립성, 합리성 등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과도한 음모론에 빠져들고 과격한 대응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번에 대법원이 선거중립의무 위반이라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유감이다. 대법원은 이번 실수와 관련해 앞으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음모론으로 단정하기에는 어색한 요소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법원이 내릴 수 있는 판결 중 무죄 확인과 파기환송도 있지만 파기자판도 있었다. 파기자판으로 유죄와 더불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면 이재명 후보는 선거판에서 즉시 퇴출됐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시기 조절 차원에서 파기환송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파기자판으로 이재명 후보가 낙마하면 민주당에서 다른 후보를 내세워 선거에 참여하는 시나리오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하게 된 서울고법이 대법원처럼 법 절차와 국민 감정을 무시하고 재판을 초고속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조희대 음모론은 속절 없이 무너진다. 서울고법 판사들은 과연 대법원장 지시에 따라 재판을 속전속결로 진행해 대법원이 6월3일 이전에 최종 선고를 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인가. 그리고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서 평생 손가락질을 받고 살 것인가. 아마 그들은 대법원처럼 선거에 개입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편해할 것이다. 지난번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정을 선고하기에 앞서 제기됐던 음모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헌법재판소가 3월 중순에 결정을 발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관들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재판관 8명 가운데 5명은 파면에 찬성하지만 3명은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은 기각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4월4일 헌재 판결문을 보면 그런 음모론은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히려 헌법재판관들이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심의했고 현명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 확인됐다. 근거없는 음모론에 부화뇌동하면서 재판관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언어를 동원해 인격모욕을 자행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박함을 꾸짖고 평생 반성과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다시 조희대 음모론을 생각해보자. 그 음모론에는 대법관을 포함해 대한민국 주요 판사들이 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좀비처럼 움직인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3심에서 파기자판을 하지 않은 것과 2심에서 이재명 후보 무죄가 선고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윤 전 대통령이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일부러 복잡한 각본을 채택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판사들이 중대 오판을 저질렀지만 음모론에 봉사하는 차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이권 보호나 자존심 확인 차원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없다는 아집의 표출, 또는 저항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 실수에 대해 최고의 경계심은 필요하지만 과격 대응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일부 어리석은 자들이 저열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우리 국민은 고도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최상급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왕선택의 세계는 지금] 윤석열 내란이 보여준 한국의 약점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122일간 이어졌던 ‘윤석열 내란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번 사태가 윤석열 파면으로 귀결된 것은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을 국내외적으로 과시한 것으로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우리의 취약점이 국제적으로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의 취약점을 되짚고 제도적·문화적 성찰을 기록하는 것은 이런 일의 재발을 막고 국가 이미지 개선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일시적이지만 붕괴됐다는 점이다.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이 스스로 헌법을 유린하는 내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 신임을 받아 막강한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그 권한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이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국민을 계몽하겠다며 군대를 동원해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앞으로 대통령 지시라 해도 계엄 선포에 따른 군부대 동원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확인 장치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또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헌법을 수호할 것인지 철저하게 따져보고 투표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대통령의 난폭한 헌정질서 파괴에 대해 공직사회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실망스러운 점이다. 특히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계엄 선포를 만류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기력한 방관자였을 뿐이다. 윤리와 양심, 헌법 책무보다도 권력에 대한 충성을 택한 결과다. 사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주군이 파면됐으니 제대로 충성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비겁하고 무책임하며 무기력한 대응이었을 뿐이다. 어리석고 난폭한 대통령과 이기적이고 무기력한 국무위원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대통령 내란이 재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이 이번 내란 행위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다. 윤 전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어서 착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회의원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인이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수호에 책임이 있는 헌법 기관이다. 국회의원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내란 동조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정치 셈법으로 봐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과반수 국민과 대립하면 대선 패배와 권력 상실은 당연하다. 국민의힘은 국민에 봉사하는 정치 기본으로 돌아가 셈법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내란 주도 세력은 물론이고 내란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진실과 사실 문제에 대해 보여준 파렴치한 태도는 윤리와 양심을 무시하고 이기주의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 일단의 병리를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변론 기회에 계엄 당일 자신이 동원한 군부대 지휘관이 자기에게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받았다고 했는데도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계엄이 금방 해제될 것을 알고 계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부당한 지시를 군인들이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도 속기 어려운 거짓말은 일부 언론의 가짜뉴스와 부정선거 주장에서도 극적으로 노출됐다. 주한미군이 선관위에 체류하던 중국인 99명을 체포해 일본 오키나와 미군부대로 이송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는 상식선을 뛰어넘는 가짜뉴스다. 부정선거 주장은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도 확인했지만 그동안 다양한 조사와 심리를 통해 근거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은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취약한 부분이 드러났으면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몇 주일이나 몇 달 만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꾸준하게 노력하면 2, 3년이 지나면 개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100여년 간의 국가적 고통을 겪은 이후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 한류 확산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나라로 올라선 만큼 이번에 드러난 몇 가지 취약점을 극복하는 과제도 멋지게 수행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오폭보다 더 실망스러운 오폭 대응

지난 6일 발생한 경기 포천 공군 전투기 오폭 사고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가 원인이었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럽고 두 차례에 걸친 교정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도 안타깝다. 또 사고 전투기 2대가 미리 정해진 경로와 다르게 비행했는데도 지상 관제팀이나 훈련 통제팀에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그런데 이번 사고와 관련해 가장 불만스러운 대목은 오폭 이후 군 당국의 대응이다. 군사훈련은 실전과 같이 진행돼야 하지만 훈련 중에 치명적인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면 군은 즉시 군사활동 모드를 멈추고 대민 행정 서비스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사실 관계를 알리고 추가적인 손실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 이후 군의 움직임을 보면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사고는 오전 10시4분 발생했지만 합참에 최초 보고가 이뤄진 것은 10시24분이었다. 소방 당국은 이미 10시5분에 주민 신고를 받고 즉각 대응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은 대응이다. 합참의장이 보고를 받은 시각은 10시40분,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에 대한 보고는 10시43분이었다. 전시였다면 합참의장은 중대한 전투 차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30분 이상 전쟁을 지도한 것이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사고와 관련해 공군의 문자 공지를 받은 것은 11시41분으로 사고 발생 이후 거의 100분이 지난 뒤였다. 합참의장 보고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61분 늦게 공지 문자가 온 것이다.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자들에 대한 공지가 지연된 것이다. 공군은 오폭 상황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1보, 2보, 3보를 순차적으로 내면서 새롭게 추가되는 내용을 보강하는 것이 표준 절차라는 점을 몰랐다는 것인가. 포천시 일대에 재난문자가 발송되지 않았다는 점도 유감스럽다. 사고 관련 초동 대응이나 인근 주민 대피가 진행됐다고 하지만 다른 행정기관과의 협조나 잠재적인 추가 폭발 가능성, 유언비어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재난문자는 발송됐어야 한다. 당시 사고 주변 거주 주민들은 남북 전쟁 가능성을 상상하면서 불안감에 떨었다고 한다. 오폭 자체보다 오폭 대응이 더 심각한 문제로 주목하는 배경 중에 하나는 과거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태에서 경험한 군과 국민 간 신뢰 붕괴 경험이다. 당시 군은 사건 발생 이후 최초 보도자료에서 사건 시점을 9시45분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다양한 제보를 종합하면 9시25분 이전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합참은 만 이틀이 지난 뒤에야 폭침 시각이 9시22분이라고 수정했다. 수정은 했지만 군에 대한 신뢰는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후였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최종 발표가 나왔지만 발표를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전시라면 군사작전과 관련해 보안이나 정보 통제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 ‘통제’와 ‘조작’은 다른 문제다. 정보 조작은 언제, 어디서나 금지 사항이다. 하물며 평시 훈련 중 발생한 사고에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신속하게 알리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불신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군 당국은 민간과 장병들의 안전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신속하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최상의, 그리고 유일한 옵션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군 지휘관들은 자신의 통제구역에서는 ‘정보 통제뿐만 아니라 조작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조작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 군 조직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상식에 맞지 않은 늑장 대응은 정보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심을 초래한다. 오폭은 물론이고 군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오폭 대응이 재발하지 않도록 군 수뇌부의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세계는 지금] 트럼프와 미국 패권의 미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격 정책이 이어지면서 지구촌 차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미국을 포함해 지구촌 전체의 안정과 번영의 기반 요소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정책을 추진할 경우 미국 주도의 단일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다극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게 된다. 동맹국 괴롭히기, 독재국가 지도자와 친선 관계 추구, 자유무역을 훼손하는 관세전쟁 유발,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 야욕 노출, 다자협력기구 탈퇴, 미국 공공외교 자산 사실상 폐기 등 국제질서 유지 시스템과 국가 번영 시스템을 훼손하고 있으니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 정책 비판이 미국의 패권 상실 전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과도하다. 그럴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정책은 길어야 3년 반, 짧으면 1년 반 이상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어쩌면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트럼프 행정부 정책 기조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에 손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과거 18세기와 19세기 유럽에서 작동했던 세력균형 시대의 정책으로 전형적인 시대착오적인 산물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유럽에서는 다수의 강대국이 경쟁하면서 세력균형 전략에 집중했다. 마치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중국에 존재했던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한 국제질서가 형성됐다.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이 강대국 경쟁에 참여했고 20세기를 전후해 독일, 러시아, 미국도 강대국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도 패권국 개념이 존재했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강한 나라라는 의미가 컸다. 패권국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되면서다. 미국과 소련이 두 진영의 패권국이 됐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이 됐다. 정리하면 지난 400여년 동안 국제질서가 오극체제에서 양극체제를 거쳐 단극체제로 변한 것이다. 패권국은 국제질서 유지 등 공공재를 제공하면서 무료 봉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 규범을 자국에 유리하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긴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은 신자유주의 접근법을 기반으로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매년 평균 경제성장률 3.8%를 기록했다. 미국 기업들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한국, 대만을 상품 제조 기지로 활용하면서 지구촌 범위에서 부익부 시스템을 관리해온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의 번영을 보장하는 대규모 장치를 스스로 파괴하고 상호 의존이 심화된 시대에서 국익 보전에 필수적인 공공외교 지침을 위반하는 것으로 국가 이미지 추락에 이어 국가 발전을 저해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미국이 쇠퇴의 길을 걷는다 해도 패권 상실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흔히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후보로 언급되지만 중국이 현재 겪고 있는 국가적 균열 위기와 혼란을 수습하고 미국에 버금가는 국가 역량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사이 트럼프의 자충수 정책에 불만을 가진 미국 내 엘리트 그룹과 기업인들이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기술력,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패권 회복 프로그램을 작동할 것이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작동 원리 가운데 자기 수정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 지식인 엘리트들도 트럼프 패닉에 빠지기보다는 미국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추진하는 새로운 패권 운영 시스템을 예상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물론 한국은 독자적인 국익 계산과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하고 다극 질서를 전제로 하는 외교 전략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도 플랜B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다.

[세계는 지금] 국가 대혁신 전략도 논의하자

2025년 을사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희망과 기대보다는 불안과 불편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연말에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인한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 내란 사태도 쉽게 정리되지 않으면서 혼란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사태 진행에서 대세는 이미 정해졌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아마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확정되고 동시에 내란 혐의 등으로 구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내란 가담자나 동조 세력에 대한 처벌도 이뤄질 것이다. 이르면 4월쯤이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고 새 정부 출범 전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긴장감 속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을 한 차원 더 격상시키는 국가 대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를 혁신하려면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최상의 전략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는가. 답변을 구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이 유용할 것이다. 이번 내란 사태로 노출된 국가적 문제점이 무엇인가. 나라 안팎에서 규범과 질서가 변화하는 가운데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 혁신 과제는 무엇인가. 이번 사태로 드러난 문제점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민주주의제도의 취약성이다. 공감 능력 없이 자기 고집만 피우면서 야당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군대를 투입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괴물 대통령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그런 경우가 생기면 즉시 제압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대통령을 왕으로 인식하면서 무조건 추종하는 국민도 상당수 존재하는 만큼 민주주의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 중 가장 중대한 것은 정치 양극화 해소다. 이번 사태도 현직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를 제압하겠다는 망상에 빠져 내란을 일으킨 사례라는 점에서 양극화의 후과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윤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양극화의 소산이다. 새 정부는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총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과도한 양극화로 치명적 타격을 받은 부분이 외교안보 분야다. 윤석열 정부는 진보 진영에 친북반미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자신들은 반대 방향의 정책을 추진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에 집중했는데 거기까지는 가능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북한, 중국, 러시아와 지나치게 갈등 관계를 강조하는 바람에 한반도 안보 지형도가 오히려 악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외교안보 문제가 당파 싸움의 소재가 되는 순간 국익 극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초당적 외교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국가 대혁신에서 근본적인 과제다. 초당적 외교를 위해 독자적인 세계관과 전략에 기초한 외교 좌표를 설정하는 일도 주요 과제다. 정치 양극화와 편중 외교, 무능한 정부 운영은 경제와 첨단 기술 분야에도 악영향을 미쳐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과제를 스스로 훼손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오히려 소외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나 배터리, 바이오, 자동차 분야 등에서 정상급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 위상이 유지될 수 있을지, 그리고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선도국이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특히 윤석열 정부 초기 과학기술 예산 삭감은 미래 먹거리 차원에서 자해 행위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중앙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지방정부와 대학이 협력해 첨단 기술 선도국이 되기 위한 최상의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의 경우 2022년 5월 취임 이후 개인적 존재감 과시와 야당 지도자 제압에만 골몰하다 오히려 자신이 파멸되고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차기 대통령은 부디 국가적 혼란과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통합의 정치로 국가 대혁신을 달성하는 담대하고 유능하며 포용적인 지도력을 보여주면 좋겠다.

[세계는 지금] 러시아 파견 북한군은 유령인가

북한군이 러시아로 파견됐다는 소식이 나온 지 한 달이 좀 넘게 지났다. 러시아로 파견됐다는 북한군 관련 뉴스는 물론이고 사진과 동영상, 서류 등이 각종 매체를 통해 노출됐지만 북한군 규모나 주둔 장소, 임무, 활동상 등에 대한 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북한군 파병설은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영토에 대한 에이태큼스 지대지 정밀 유도미사일 공격을 허용하는 결정의 근거가 됐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공격 작전에서 신형 극초음속 중거리 미사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파병설은 여전히 모호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미 전쟁 양상을 변경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지난달 초부터 북한군 파병설과 관련해 우리 언론을 도배한 뉴스를 보면 허황된 요소가 너무 많아 불쾌감과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북한군 파병설과 관련해 가장 최근에 나온 주요 뉴스는 국가정보원이 24일 우크라이나에서 북한군이 교전을 했고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첩보가 있어 파악 중이라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23일 미국의 한 군사전문매체는 정보 출처를 제시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지난 20일 스톰섀도 순항미사일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하면서 북한군 50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뉴스는 이틀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내용, 즉 북한군 장교 1명이 부상했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한편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북한군 3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사후 보도인데도 중요한 사실 관계가 황당할 정도로 다르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또는 미국에서 심각한 수준의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와의 교전에서 사망하거나 부상했다는 보도 및 주장은 이미 10월 초부터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지난 10월3일,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도네츠크 지역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훈련 프로그램을 수행하던 북한군 장교 6명이 우크라이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뉴스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 한국의 정보당국은 아무런 논평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10월22일 우크라이나 매체 보도를 보면 러시아군에 소속된 중국인 용병은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올린 글에서 북한군 장교 8명이 전사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군이 형편없는 군대라고 폄하했다. 10월25일에는 북한군 병사 1명이 포로로 잡혔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나왔는데 해당 청년이 우크라이나 말을 하고 군복이나 표식도 맞지 않아 특정 세력의 미숙한 조작극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10월28일에는 리투아니아의 친우크라이나 단체가 10월25일 북한군이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했고 부대원 40명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10월31일에는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북한군 병사의 인터뷰 동영상이 유포됐다. 해당 군인은 북한말을 사용하면서 처참한 전투 상황을 묘사했지만 얼굴을 완전히 가려 조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와 관련해 북한군 파병설을 세계적으로 유포해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조차 북한군은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면서 북한군 40명 전멸 주장을 부인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는 전쟁 당사자라는 점에서 전쟁 승리를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정보 조작과 심리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사실과 동떨어진 심리전에 넘어가 북한이나 러시아, 또는 제3국에 대해 과도한 언사 및 불필요한 조치를 투사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난달 18일 국가정보원은 북한군 파견과 관련한 정보를 공식으로 확인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정보당국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행보였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정부 당국자들이 대(對)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을 언급하고 병력 파견까지 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부화뇌동 사례로 남을 것이다. 우리 언론도 외국 정부의 선전선동 도구로 전락하기보다는 이전 보도 내용을 검색하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무인기 이전투구’와 글로벌 중추국가의 품격

북한군의 러시아 파견 소식으로 한반도가 흔들거리는 와중에 이른바 ‘평양 상공 무인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28일 평양 상공 무인기와 관련해 조사를 마쳤다면서 해당 무인기가 지난 10일 밤 백령도를 출발해 다음 날 새벽 평양 상공에서 정치 선전물을 살포했다고 발표했다. 대변인은 또 해당 무인기가 2023년 6월5일부터 2024년 10월8일 사이에 238회를 비행했는데 10월8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국 영내 비행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 합참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확인해줄 수 없고,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보여준 사진 속 무인기가 한국군 무인기와 비슷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2월 북한으로 무인기 침투를 공공연하게 지시한 점, 그리고 우리 합참에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군이나 민간 단체가 무인기 및 풍선을 이용해 북한으로 전단을 살포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부적절한데 무엇보다도 각종 국내법과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남북교류협력법상 무허가 물품 반출과 무허가 통신 교류에 해당할 수 있다.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에서 남북 간 적대행위 금지 조항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에는 북한 측과 무허가 회합이나 통신 금지 조항에 해당할 수 있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군사경계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는 금지된다는 조항에도 해당할 수 있다. 항공안전법에도 걸린다. 전단을 살포하면서 대형 풍선이나 드론을 사용하게 되는데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위반이다. 전단 살포 과정에서 헬륨가스 등 폭발성 물질은 무허가로 사용하면 위험물안전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 형법 및 경범죄 처벌법에도 위반 항목이 있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타인 재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는 금지된다. 대북전단 등 북한으로 물품을 막연하게 보내는 행위는 관세법과 무역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수출입 절차와 세금 납부 절차를 어기는 것이고 결국 관세 미납에 해당한다. 식품위생법도 문제다. 대북전단과 함께 식품이나 의약품, 생활용품을 보내기도 하는데 위생검사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위반이다. 감염병 예방과 관리법 위반에도 해당한다. 환경법 차원에서 전단과 비닐풍선 등이 자연 오염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위반이다. 더욱 심각한 부분은 국제법 위반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전형적인 심리전인 만큼 정전협정에서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금지 조항 위반이다. 유엔 헌장에서 무력 사용 또는 위협 금지 조항, 그리고 국제인도법에서 적대적 선전물 금지 조항에 해당할 수 있다. 대북전단 내용은 국제인권 관련 규약에서 금지한 정치적 선동과 국가 간 증오 발언에 해당할 수 있다. 대북전단 살포는 일방적인 통신 행위인 만큼 국제우편 및 통신 관련 규정에도 위반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선도국가인 만큼 국제 질서와 규범을 위반하는 것은 정체성과 품격을 훼손하는 자해 행위에 속한다. 북한이 먼저 도발하는데 우리만 법을 지킬 수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남과 북은 국가 역량이나 성격 등을 고려하면 격차가 매우 커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남과 북은 80배 정도 차이가 난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한계국가로 취급받는 북한과 쌍방과실로 처리되는 전단 살포 맞대결을 벌이면 당연히 한국이 손해다. 전단과 오물을 주고받는 진흙탕 싸움은 북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설사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오물을 뒤집어쓰는 낭패를 피할 수 없다.

[세계는 지금] 한반도 긴장 고조... 남북 핫라인 시급

한반도를 휘감았던 역대급 무더위는 9월 하순에 들어서야 마침내 기세가 꺾였다. 그러나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불길한 뉴스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다. 쓰레기 풍선,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북-러 고위급 회담 등의 뉴스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대응은 안이하고 언론도 관심이 떨어진 모습이다. 군사적 긴장 상황에 둔감하면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허를 찔렸던 일이 한반도에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최근 가장 민감했던 상황은 북-러 고위급 대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지난 13일 갑자기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한 것이다. 러시아 매체인 차르그라드는 이번 대화에 대해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서방에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전략적 변화를 준비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이 개입하는 방안이 논의됐을 것이다. 북-러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는 시점과 맞물려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한 것과 초대형 방사포 발사 훈련을 보도한 것도 심각하다. 북한의 빈번한 위협은 한반도가 불안한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한다. 북한의 제7차 핵실험 가능성이 자주 거론되는 것도 한반도 군사 긴장의 규모와 심각성을 보여준다. 쓰레기 풍선도 화재 유발과 시설물 파손 등이 잇따라 보고되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소다. 만약 북한이 쓰레기 풍선을 날리면서 의도적으로 남한 내 정유소나 낙엽이 쌓인 산에 떨어지게 해 대규모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반도가 군사적 긴장 지역이라는 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외국 자본가들은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 대응은 안일하게 보인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은 지정학적 불안감을 자극하는 사안인데도 정부 고위 인사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를 전달하듯 무심하게 언급할 뿐이다. 특히 북한 핵실험의 주요 변수인 군사기술적 요소나 북중 관계는 언급이 없고 연관성이 떨어지는 미국 대선 일정을 거론하는 것도 북한을 예의주시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더욱 큰 문제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을 포함해 남북 소통 채널이 완전히 단절됐다는 사실이다. 정부 당국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남북 소통 채널 부재의 위험성이나 연락망 재구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의 사그라진 것도 실망스럽다. 남북 간 소통 채널 구축과 별도로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 대응 차원에서 군사적 태세 정비와 한미동맹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군에서는 최근 추악한 하극상 사건이나 병사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다. 또 일부 보수 진영이 독자 핵무장론을 계속 제기하는 상황도 심각하다. 독자 핵무장론은 한미동맹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부가 방치하면 미국의 불만이 급격하게 커지고 한미동맹이 치명적으로 약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군사적 긴장 고조 상황에 직면해 핫라인 구축이 긴급 대응이고 군사적 대비 태세 강화가 표준적 대응이라면 외부 위협 자체를 외교 방법으로 소멸시키는 것은 근본적 대응이다. 시급한 대응은 물론이고 근본 대응을 위해서도 북한과의 협상 채널을 유지하는 것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기본에 속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가짜 평화로 규정하고 오직 단호하고 강경한 대응을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기본을 어기면 정세 판단에서 오류가 생기고, 최상의 대응 전략을 만들 수 없다.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지금처럼 핫라인이 없는 조건에서는 국지전 발생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국지전이 발생하면 우리의 젊은 군인들이 희생돼야 하고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기본에 충실한 외교안보 정책을 채택해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국민적 불안을 줄이는 노력에 집중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세계는 지금] 멈출 줄 모르는 영국 극우 폭력 시위

7월29일, 영국의 사우스포트 지역의 댄스 교실에서 춤을 배우던 어린이 3명이 17세 소년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을 해친 괴한의 신원이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인터넷에 퍼졌고 이로 인해 사우스포트에서는 반이슬람, 반이민 시위가 시작됐다. 사실 범인은 무슬림도 아니고 영국 태생이라는 정확한 신원 정보가 뒤늦게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시위는 잦아들기는커녕 여전히 꺼질 기미 없는 산불처럼 영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이 극우 성향 선동가들의 난동은 ‘시위’를 넘어 야만적인 ‘폭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난민과 망명자가 있는 숙소에 불을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가 하면 난민전문 인권변호사의 사무실까지도 공격하며 많은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유학생인 필자의 시선으로 본 이 상황은 사실 놀랍다기보다는 그저 그동안 쌓여온 사회 문제가 드디어 크게 터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이라는 국가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굉장히 좋은 나라다. 영국이라는 나라에 연상되는 키워드는 아마 ‘신사의 나라’ 또는 ‘홍차의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영국에 거주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이미지와 괴리감이 들기 시작한다. 신사는 찾기 어렵고 사회에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며 그들이 즐기는 홍차는 제국주의 식민지를 수탈해 수입하기 시작한 찻잎으로 끓인 차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아름다운 외면에는 항상 내면의 추함 또한 숨겨져 있는 법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국의 폭력 시위는 그 어느 때보다 규모 크고 야만적이다. 최근 정권이 바뀐 영국은 그전까지 14년 동안 보수당의 나라였다. 이 14년 동안 보수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은 방식은 바로 포퓰리즘 정치였다. 보수당 정권은 유럽연합의 모토인 ‘다양성 속의 조화’를 오히려 경제난의 원인으로 분석하고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일자리 활성화를 ‘브렉시트’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막았다. 이런 정치는 자국민으로 하여금 난민과 불법 이민자들이 영국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했고 총리가 국제 인권법을 무시하는 법률을 만들어 당당하게 의회 통과를 요청하는 등 외국인과 난민, 그리고 특정 종교의 차별을 암시하는 제노포비아적 정치를 행해 왔다.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영국은 최악의 경제난을 겪게 됐고 새로운 정권인 노동당이 현재 이에 대한 뒷수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폭동의 수위를 보고 있자니 보수당의 포퓰리즘 정치가 그동안 제대로 먹혀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사회에는 오랜 기간 잘못된 정치로 국민의 갈등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혐오와 편견이 축적돼 있었고 이번 사우스포트 사건은 폭동의 표면적인 명분이 된 것이라고 분석된다. 무분별하게 거짓 정보를 나르는 소셜네트워크에 쉽게 속은 사람들의 문제 또한 크다. 그동안의 잘못된 정치로 보수당이 남겨 놓은 숙제가 많을 것이라는 건 모두가 예상했지만 노동당이 진 짐은 생각보다 훨씬 큰 것 같다.

[세계는 지금] 중동지역 전면전, 외교적 해결은 가능한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협상 중재안을 거부했다. 휴전협상에 대해 낙관적이라는 의견을 밝힌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기대를 저버린 결과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미국, 이집트, 카타르 등 중재국이 “환상을 팔고 있다”고 주장한 하마스는 휴전협상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제시된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 사태가 발발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하마스 공격 당시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약 1천200명, 현재까지 가자지구 작전 중 사망한 이스라엘군은 329명이다. 반면 지난 10개월여에 걸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사망한 가자지역 주민 수는 4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전 세계의 분쟁에서 발생한 간접 사망자가 직접 사망자의 3~15배에 달한다는 통계에 의거해 볼 때 가자지구 사망자도 최대 18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미국 보건학 연구 단체의 주장은 상당한 신빙성을 가진다. 이는 가자지구에서 매일 평균 130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음을 의미하며 가자지구 인구를 약 250만명으로 추산하면 13명 중 1명 정도가 전쟁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숨진 셈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이들 사망자의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사실이다. 하마스 괴멸을 목표로 내세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학교, 병원, 예배 장소 등 전쟁에서 공격이 금지된 장소에 공습과 과격한 지상전을 펼쳐 왔다. 이러한 무차별적 공세 속에 여성, 어린이, 노약자 등 전쟁에서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이 대규모로 살해되면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전쟁범죄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하마스 정치국장 이스마엘 하니예의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한 이란의 보복 공격 발표로 중동지역은 전면전의 위기감에 휩싸였다. 영국과 프랑스 외교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하마스 사태 발발 이후 아홉 번째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모두 한목소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하마스 사태로 발생한 현상에 대한 위기감과 긴박함을 뒤로하고 하마스 사태의 본질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되짚어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누구의 잘못인가. 과연 서방 강대국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공정하고 진정한 해결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상당히 엉뚱하고 과장된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10개월 동안 공격해 4만명 이상의 대만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외교적 해결을 외치며 어떤 중재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러시아-이란의 군사협력과 북-러 협력의 미래

유럽 및 중동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협력은 현재 국제 정세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중동 및 유라시아의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의 협력은 북-러 군사협력의 구도와 일정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을 통해 보다 확장적으로 가시화될 북-러의 군사협력을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22년까지 러시아는 이란에 지상, 항공우주, 해군 분야에 걸쳐 중요한 군사 지원을 해 왔다. 특히 탱크, 장갑차, 대전차미사일, 전투기, 헬리콥터, 지대공미사일 등 다양한 재래식 무기를 포괄했다. 그런데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협력은 양적, 질적으로 도약했다. 전자전, 우주, 사이버 등으로 협력 분야도 확대됐다. 2022년 8월 이란은 러시아와의 협업으로 ‘하이얌’ 정찰·관측용 위성을 발사했고 그해 12월에는 이란의 우주 프로그램 지원을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2024년 2월에는 이란의 지형을 500㎞ 상공에서 스캔할 수 있는 연구용 위성을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발사했다. 또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에서의 전자전 경험을 토대로 GPS 교란 재밍 기술을 이란에 지원했다. 여기에 야크-130 훈련기와 같은 재래식 무기 지원도 이뤄졌다. 한편 이란은 러시아에 포탄, 탄약, 대전차로켓, 박격포 포탄, 활공폭탄 등 우크라이나 지상전에 필요한 무기들을 지원해 왔다. 특히 이란제 드론과 드론 기술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아 왔다. 2024년 5월 현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최소 4천대의 이란산 샤헤드 드론을 발사했다. 이란은 또 제재를 우회하거나 대응하는 방법을 러시아와 공유하는 등 비군사적 지원도 해 왔다. 2023년 12월에 미국의 제재에 공동 대응하는 선언문에 서명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은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반미 코드의 공유가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의 압력, 국제적인 비확산 규범 및 수출 통제 체제 준수, 이란의 무기 대금 능력,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양국 간의 역사적 불신 때문에 협력을 의식적으로 제한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해 있다. 물론 양국의 군사협력이 전면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Su-35와 같은 첨단 전투기, S-400과 같은 첨단 대공미사일 등 이란이 강력하게 원하는 무기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공급과 지불에서 갖는 신뢰의 문제, 첨단 무기 지원 따른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변화, 첨단 기술 이전이 가져올 파급 영향 등은 러시아의 주요 고민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군사협력을 촉진·조정하는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2월 이후 양국 국방 분야 고위급 교류가 대폭 증가했다. 새로 들어선 이란 대통령 및 내각이 안정화되면 향후 협정을 통해 무기의 공동생산과 수송·무역 관련 인프라 확충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라면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도 양국의 군사협력 관계는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 모두 미래의 군사적 상황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최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항할 수 있는 항공우주, 미사일 방어, 장거리 공격, 대함미사일 및 드론 등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또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바탕으로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이라크 민병대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고 이란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이해가 있다. 러시아는 장거리 타격, 방공, 해군 능력 모두에서 완전한 시스템 또는 기술 이전, 작전 지식 공유 등을 해 줄 수 있는 국가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작전에 필요한 탄약, 드론, 미사일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의 소모된 무기와 군수품 재고를 보충하기 위해 이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대러시아 제재를 우회하는 무기 부품 공급 루트로 이란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한편 북-러 군사협력은 러시아-이란 협력과 복사판처럼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의 정상회담 이후 올해 6월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하며 협력을 공식 메커니즘화하고 있다. 군사정찰위성을 비롯한 우주개발 분야, 중장거리 미사일 다탄두화, 대공미사일, 해군·공군의 현대화, 무인공격·정찰기 등 북한과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이 높은 분야들은 이미 러시아-이란 군사협력과 오버랩되는 분야다. 최근 잦아진 북한의 GPS 교란 및 재밍 역시 포함될 수 있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을 조금 앞선 북-러 협력의 미래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디지털 경제, 한국 미래를 여는 열쇠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경기 하이라이트 비디오를 자동 생성하고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파리 올림픽 파트너십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 기업 삼성전자는 자사 제품인 Z플립6의 올림픽 에디션을 출시하고 ‘빅토리 셀피’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상대에서 선수들이 셀카를 찍는 모습을 연출하도록 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 혁신은 올림픽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으며 기업들에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됐다. 디지털 경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경제 활동을 의미하며 이는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에 혁신을 가져온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 역시 이번 하계올림픽에서 100억유로(약 15조118억원)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함으로써 관광, 건설, 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디지털 경제는 각국 경제에서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2년 미국과 일본 및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디지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 10%, 41.5%를 기록했고 앞으로 더 성장할 전망이다. 또 중국은 ‘디지털 차이나’ 정책을 통해 디지털 인프라 강화 및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육성하고 있다. 미국도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일본은 ‘디지털 일본’ 전략을 통해 전자정부 구축과 스마트시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뉴딜’과 ‘디지털 플랫폼 정부’ 등을 통해 디지털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노력하고 있고 작년에는 ‘디지털 경제 파트너십 협정(DEPA)’에 가입해 글로벌 디지털 통상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글로벌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에서 8위를 차지하고 있고 2027년까지 세계 3위의 디지털 경쟁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하고 5G 및 향후 6G 기술을 도입해 디지털 경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 미래 인재를 양성하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들도 AI, 빅데이터, IoT 등을 활용해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AI와 Io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가전제품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경제는 한국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하고 혁신 기술을 도입하며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면 한국 경제는 장기적인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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