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것

요즘 대통령의 업무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그 장면이 국민에게 생중계되면서 새로운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질의에 대한 모 공사 사장 간의 논쟁이 그 가운데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 간의 논쟁이 아니라 그 장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그런 사안에 대통령이 시간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공기업 이사장이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사람들은 무엇이 진리인가를 찾는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누가 더 옳은지를 가려내려 애쓴다. 즉, 국가적·사회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보다는 자기편이 누구냐에 따라 반응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우리 국가와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미래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개인 간의 의견 중 누가 더 우세한가에 대한 관심만 생겨난다. 이런 논쟁에서는 ‘누가 옳은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판단은 언제나 그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게 된다. 이처럼 관점에 따라 결론이 갈리는 사안에서 국민과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이는 주관적인 판단이나 편견, 고정관념을 멈추고 사태 자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이는 사건에 대한 평가를 넘어 그 사람의 진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편향을 넘어 각자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한 방법은 신문기사에 나온 내용을 이름과 소속을 가린 채 읽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은 먼 거리에서 논쟁을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구경꾼의 역할을 내려놓고 사태의 적극적 해석자가 돼야 한다. 무엇이 우리 삶과 가치를 향상시키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앞으로도 갖가지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그때마다 내 편이 아니어서 기분 나쁘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찾아볼 때 기쁜 시간이 가득할 것이다.

[천자춘추] 기회의 빈곤

6·25전쟁 전후에 태어난 세대의 다수는 절대 빈곤을 겪었다. 영양실조에 시달리거나 굶주림으로 생명을 잃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다소 비장하게 들릴 수 있으나 당시 서민에게 삶의 목표는 다름 아닌 ‘생존’이었고 이 절박함은 곧 삶을 견인하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기성세대가 ‘근면’, ‘성실’, ‘헝그리 정신’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생존에 필요한 정신적 유산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고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운 정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치열한 취업 현실을 ‘생존 경쟁’에 비유하곤 하지만 굶주림과 질병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의미 그대로의 생존 위기는 더 이상 없다. 이 지점에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직업을 바라보는 기준은 달라진다. 천신만고 끝에 경제적 기반을 이룬 기성세대 직업관은 여전히 생존 시대에 머물러 있다. 즉, 남들 일할 때 함께 일하고 남들 쉴 때도 일해서 한발 앞서가야 한다는 믿음, 위에서 시키는 일이 합리적이지 않아도 묵묵히 감내하면 된다는 문화가 그것이다. 한 직장에 오래 근속하면서 승진과 발전을 경험한 이들은 성실과 인내의 결실이 크고 달았다는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1년을 못 채우고 퇴사하는 청년들이 못마땅하다. 고학력 청년들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안정적인 평생직장이 사라졌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물질적 빈곤의 시대를 지나 기회가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청년들은 첫술에 배부르지 않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역량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정보는 어디에나 널려 있고 혁신은 날로 거듭되지만 밀도 있는 경험은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 성장하는 방법은 없다. 동료와 상사는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업무지침서처럼 편리하지 않지만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앞날을 기획하는 데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한편 기성세대는 산업화시대의 잣대로 청년의 일하는 자세를 운운하기에 앞서 기회의 사다리가 무너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청년에게 재량껏 기회를 내주고 좌절하지 않도록 버팀목이 돼주며 오랜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몸소 보여줘야 한다. 지금은 청년에게는 성장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천자춘추] 이민사회통합, 실효적 조치가 절실하다

필자가 일하는 경기도이민사회통합지원센터는 지원 기관이자 정책 개발 기관이도 하다. 정책 개발을 위해 매년 조사가 이뤄진다. 올 해의 조사 주제는 이주배경도민의 ‘공공서비스 이용 실태’, 곧 서비스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경기도가 목표로 하는 ‘모두가 환영받고 모두가 존중받는 사람중심 이민사회’의 성패가 이주민의 사회통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 접근성과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는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이주민의 사회통합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이주민의 일상 생활은 체류, 구직 활동, 자녀 보육과 교육, 보건·의료, 납세, 안전 등 공공 서비스 매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조사는 도내에 거주하는 공공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19세 이상의 이주배경도민 및 국적취득 이주민 49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 결과 전체 이주민의 3분의 2가량은 공공서비스 이용 경험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용자의 53%가량은 ‘단독 이용’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용자의 3분의 1가량은 서비스 이용 시 차별까지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점은 서비스 이용 시 조력자 의존율이 가장 높은 집단이 한국어 역량과 한국문화 이해도가 최고 수준인 영주권자와 국적취득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공공서비스 이용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경험하는 집단 역시 한국에서 생활한 지 ‘5~10년’ 된 이주민들이었다. 분석 결과 한국 사회 적응과 정착의 주요 지표로 알려진 ‘한국어 역량’이나 ‘가족 동거’ 여부는 서비스 이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통념과는 다르게 거주안정성, 곧 한국어와 한국문화 습득 수준이 높은 정주 이주민일수록 서비스 장벽을 더욱 높게 체감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에 참여한 이주배경도민의 무려 93%는 한국의 공공서비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관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조사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엄격한 요건과 역량을 갖춘 이주민들조차 여전히 사회통합의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받기보다는 사회적 타자로서 주변부적 위상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기도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정체감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기꺼이 매진할 준비가 돼 있는 다수의 이주배경도민의 사회 참여가 거부돼야 하는 어떠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 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역량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도록 실효적 조치의 도입이 적극적으로 모색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준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과 더불어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요즈음의 세계 무역 환경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수출기업이라면 업종과 규모를 떠나 기본적인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며 ‘우리 회사가 다루는 제품은 방산과 무관하니 상관없다’는 인식은 기업 컴플라이언스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러한 글로벌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준수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최근 정부는 관세청 내 무역안보특별조사단 신설을 검토하며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준수를 위한 불법 우회수출, 허위신고, 기술 유출에 대한 조사 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즉, 수출이 행해진 순간부터 이뤄진 후까지의 거래 모두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의 관리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는 곧 수출물품의 통관 단계뿐 아니라 사후관리, 거래 상대방 검증, 기술 이전 관리까지 전방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준수라고 하면 우리나라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절차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 핵심을 요약해보면 △수출물품의 전략물자 해당 여부의 정확한 판정 △거래 상대방과 최종 사용자의 거래 구조에 대한 명확한 파악 △(수출허가 필요시) 수출허가 진행 △내부 컴플라이언스 관리 체계 구축을 통한 업무 누락 방지로 정리된다. 즉, 우리나라 수출기업은 수출을 이행하기 전 단계부터 이행 이후까지의 모든 단계에서 무역안보관리원의 전략물자관리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이와 더불어 전략물자 관리 전문 관세사 등의 조력을 받아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준수에 누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에 유념해야 한다. 전략물자 수출통제는 우리나라 수출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니라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신뢰받기 위한 기본 인프라다. 우리나라 대외무역법에 따른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준수 프로세스 구축을 통해 기업의 대내외적 리스크를 줄이고 해외 고객사에 더 강한 신뢰를 줄 수 있다. 이제는 “몰랐다”가 통하지 않는 시대다. 빠르게 바뀌는 대외환경 속에서 우리나라 수출기업은 자체적인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준수 의지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략물자 관리 전문 관세사와 함께 전략물자 관리 프로세스를 필수적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내년부터 달라지는 연금제도

2026년 1월부터 개정된 연금제도가 시행된다.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이뤄진 연금개혁에 따라 여러 변화가 예정돼 있는데 세부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가장 큰 변화는 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연금액이 가입자 생애 평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관련 내용이다. 연금 보험료율은 현재 9%에서 0.5%포인트 인상된 9.5%가 적용되며 매년 0.5%포인트씩 8년간 단계적으로 인상돼 2033년 13%에 이르게 된다. 소득대체율은 올해 41.5%에서 2026년 43%로 상향 조정된다. 즉, 보험료를 일부 인상함과 동시에 연금 급여도 증액해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로 변경된다. 보험료율 인상과 더불어 다양한 지원제도도 확대 시행된다. 크레딧은 국민연금 수급 기회 및 수급액 확대를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추면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 주는 제도로 출산 및 군복무 크레딧 지원이 확대된다. 둘째 아이는 12개월, 셋째부터는 18개월이 인정되며 최대 50개월까지 가입 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던 기존 출산 크레딧은 내년부턴 첫째 아이부터 가입 기간 12개월을 인정받게 되며 50개월의 상한도 폐지된다. 군복무 크레딧 인정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확대된다. 이와 함께 저소득 지역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도 확대된다. 현재는 사업 중단, 실직, 휴직 등으로 납부 예외 중인 지역 가입자가 일정 수준의 재산 및 소득 수준을 충족한 상태에서 연금보험료 납부를 재개한 경우에 최대 12개월간 보험료의 50%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2026년부터는 일정 소득 수준 이하의 지역 가입자로 지원 대상이 확대된다. 이번 연금 개혁을 통해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하는 내용의 지급 보장이 명문화됐다. ‘국민연금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지급 보장 명문화가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대(對)국민 신뢰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연금개혁을 통해 2026년부터 여러 변화가 예정돼 있다. 이번에 시행되는 연금개혁 내용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과 적정 수준의 급여 지급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논의 속에서 결정된 사안이므로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천자춘추] 성적을 바라보는 관점과 승강 PO

감독을 선임하면 대략 2, 3년 기간의 계약을 한다. 팬, 그리고 지역민, 감독을 선임한 구단은 응원하고 즐기며 감독의 역량을 평가한다. 어떤 기준으로 할까. 축구장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필자는 승부욕을 바탕으로 경기를 즐기려 노력한다.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일하던 중 포항스틸러스의 부름을 받아 지도자 생활을 다시 이어 갔다. 그러나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강등권에서 탈출해 K리그1에 잔류시키는 것이었다. 한 경기라도 패하면 2부리그 강등 위기. 겉으론 태연했지만 강박관념으로 인해 정말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감독 선임은 1년의 시즌을 마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선수의 평가, 새로운 선수의 영입으로 선수단을 정비한 후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전술적으로 안정감을 보여줄 만큼의 훈련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약 12주 동안의 훈련을 통해 팀의 안정감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구단과 팬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팀은 적어도 시즌 시작 5, 6경기 이후 안정감을 보여야 한다. 12주의 훈련 기간과 5, 6경기 기간에 팀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평가를 한 몸으로 받는 감독의 심정은 어떠할까. 대한민국의 K리그는 리그1 12개팀, 리그2 14개팀이 각각의 디비전에서 경쟁하며 승강제에 의해 승격 및 강등을 한다. 2013년 승강제가 시작돼 많은 구단과 팬들이 다이렉트 승격의 기쁨과 강등의 좌절을 맛봤다. 또 승강플레이 오프에서 승리하며 살아남은 리그1의 팀은 우승 이상의 쾌락을 느낀다. 그러나 패한 리그2팀은 1년간의 노고가 물거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디비전 시스템의 꽃은 승강 플레이오프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2023년 필자는 수원FC 단장으로 선임돼 평소의 계획을 이어 가게 됐다. 그리고 데뷔 첫해 수원FC가 K리그1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 오히려 흥분된 마음으로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2주 일찍 끝난 우승팀 세리머니보다 훨씬 더 즐겁고, 신나고 행복했다. 올해 역시 같은 시간을 보냈고 감독과 선수단을 믿음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선수단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경기력으로 6년 만에 다시 K2로 내려가게 됐다. 단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천자춘추] 희망 피우는 ‘12월의 꽃’

12월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다림’과 ‘마무리’라는 두 단어를 떠올린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어딘가 따뜻함이 스며드는 계절, 그 중심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그리고 이 계절의 분위기를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언제나 꽃이다. 꽃은 계절을 따라 피고 지지만 겨울의 꽃은 유난히 더 강하고 상징적이며 존재감이 뚜렷하다. 봄의 꽃은 새로움과 설렘을 가장 먼저 전한다. 겨우내 웅크렸던 땅을 깨우듯 벚꽃과 수선화, 히아신스가 피어나며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를 건넨다. 여름의 꽃은 또 다르다. 강렬한 햇빛 아래 피어난 장미와 수국은 생명력 그 자체로 계절의 정점을 향한 힘을 보여준다. 가을의 국화와 코스모스는 깊어지는 색과 함께 비로소 한 해가 천천히 저물어감을 느낀다. 이렇게 사계절의 꽃이 각기 다른 감정을 품고 흐르다가 마지막 계절 12월에 이르면 꽃은 조용하고 단단한 존재로 남는다. 겨울은 색을 덜어낸 계절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오히려 더 확실한 메시지를 건넨다. 차갑고 고요한 공기 속에서 피는 꽃은 화려함 대신 깊이를, 따뜻함 대신 짙은 상징을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포인세티아는 단연 12월의 주인공이다. 붉고 선명한 포엽은 사랑과 온기를, 초록 잎은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표현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상징이자 연말의 기원을 담아 장식하는 가장 따뜻한 꽃으로 자리 잡았다. 트리 옆이나 창가에 포인세티아 한 송이만 놓아도 공간은 금세 축제의 온도로 변하고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마음은 조용히 데워진다. 함께 겨울을 대표하는 아마릴리스는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기품을 가진 꽃이다. 긴 줄기 위로 피어나는 꽃은 겨울의 단정한 선을 닮아 있으며 진한 존재감으로 공간을 채운다. 화려한 열매나 솔잎, 은색 리프와 어우러지면 겨울 장식은 단순한 데커레이션이 아니라 ‘겨울 감정의 연출’이 된다. 작은 붉은 요소 하나만 더해도 연말 특유의 따뜻한 기운이 피어오른다. 사계의 꽃이 계절의 성격을 말해준다면 12월의 꽃은 한 해의 끝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언어다. 화려함은 덜어내고 대신 조용한 깊이를 담아 마음을 데우는 계절의 선물. 그래서 겨울의 꽃들은 가장 차갑고 가장 바쁜 시기에도 사람들에게 잔잔한 휴식을 건넨다. 계절의 끝에서 새해를 향한 희망을 조용히 피워 올린다.

[천자춘추] ‘피지컬 AI’와 중소기업

인공지능(AI)이 이제는 사람의 언어·지식 노동을 넘어 ‘물리적 노동’까지 대체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 반복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장에서 데이터를 스스로 축적하고 학습하며 공정을 최적화하는 ‘피지컬 AI’ 개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AI 반도체, 로봇·제조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산업계 역시 자동화 설비와 생성형 AI를 결합한 생산혁신 프로젝트를 적극 확대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에 선택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피지컬 AI는 중소기업이 ‘적은 비용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전략은 ‘데이터 표준화’다. 많은 중소기업이 여전히 작업일지, 설비 기록, 품질 데이터를 수기로 남기고 있다. AI는 이런 비정형 데이터에서는 학습 효과가 거의 없다. 우선 작업 절차·설비 상태·불량 기록을 디지털로 수집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 된다. 두 번째 전략은 ‘작은 자동화부터 시작하는 방식’이다. 공정 전체를 한번에 바꾸려 하면 비용과 저항이 커진다. 불량 검출, 단순 조립, 반복 피킹 같은 ‘작은 공정’에 AI 센서나 협동로봇을 적용하면 투자 대비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 초기 성공 경험이 쌓이면 조직 내부의 기술 수용성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세 번째 전략은 ‘정책금융 활용’이다. 스마트공장 구축, AI 도입, 생산라인 자동화는 자체 자금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이때 보증·정책자금·연구개발(R&D) 지원을 연계해 활용하면 자본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도입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데이터 기반 생산체계 구축은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분야라 접근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피지컬 AI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변화 관리’라는 사실이다. 기술을 도입해도 현장이 따라오지 못하면 성과는 나지 않는다. 작업자의 참여, 교육, 공정 재설계, 그리고 변화에 대한 공감대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피지컬 AI는 거대한 위기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회다. 기술 격차는 피할 수 없지만 중소기업이 현실적인 범위에서 데이터와 자동화를 구축해 나간다면 생산성과 경쟁력은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혁신’이 아니라 ‘가능한 변화부터 시작하는 용기’다.

[천자춘추] 교통안전관리 조직체계

교통안전관리조직은 교통안전관리 직능의 한 요소이자 조직체의 구조적 측면을 취급한다는 뜻에서 가장 중요한 체계다. 능률적이면서도 유효한 관리 활동을 위해서는 안전관리에 알맞은 조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관리조직은 △안전관리 목적 달성의 수단일 것 △안전관리 달성에 지장이 없는 한 단순할 것 △인간을 목적 달성 수단의 요소로 인식할 것 △구성원을 능률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 △운영자에게 통제상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 △구성원 상호 간을 공식조직으로 연결할 것 △환경의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유기체일 것이 요구된다. 조직이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업무 작업, 사업을 여러 사람이 협력해 하고자 할 때 마련되는 것으로 조직 편성의 효과는 단순히 사람의 능력을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효과를 얻고자 하는 데 있다. 특히 교통 운수업 같은 경우 대부분의 작업이 단독, 폐쇄적인 운전석에서 이뤄져야 하므로 공동 협력 체제의 확립이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교통안전관리에 관한 일도 교통안전담당자 혼자만으로는 결코 실효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체제, 편제, 조직 확립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교통안전담당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사적 관리 체계의 제도화가 요구된다. 교통안전담당자는 사업체 내 교통안전관리 업무를 실시함에 있어 소속을 불문하고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이를 위해 인간적 조직으로의 안전관리체계를 정비하고 사업체 내에서는 일원적 관리·통제가 하위조직까지 미칠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업체에 따라 인간적 조직을 지나치게 소외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뜻에서 본래 있어야 할 직제를 활용하면서도 사업체의 실태에 적합한 체계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안전관리조직의 목적은 모든 구성원의 직무와 상호관계를 정확히 규정하는 데 있다. 모든 구성원의 안전이라는 목적을 능률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함이다. 단, 모든 사람의 활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취급할 때 조직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간관계 요소를 폭넓게,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천자춘추] 지방체육 활성화

한국 사회는 지금 인구절벽과 지역소멸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지방의 공동화를 가속시키고 고령화는 생산인구 감소와 복지비용의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위기의 시대에 ‘체육’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지역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사회적 투자로 주목받고 있다. 지방체육의 본질은 지역 고유의 문화를 담고 있다는 데 있다. 경북의 씨름, 강원의 동계스포츠, 전남의 해양레저처럼 지역이 가진 자원을 기반으로 한 체육 활성화는 단순한 경기 참여를 넘어 지역의 브랜드와 정체성을 강화한다. 지역 체육 인프라가 생활의 중심이 될 때 사람들은 더 오래 머물고, 청년층은 일자리를 찾으며, 지역의 공동체는 재생된다. 체육은 그 자체로 지역을 지탱하는 ‘생활경제’의 축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일본의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은 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를 활용해 스포츠와 예술, 정보기술(IT) 창업을 결합한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했다. 결과적으로 젊은층이 다시 돌아왔고 지역경제가 살아났다. 덴마크의 오덴세 역시 체육시설을 중심으로 한 ‘액티브시티(Active City)’ 전략을 통해 고령자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국민건강보험 지출을 줄이는 성과를 냈다. 체육은 복지, 문화, 산업을 잇는 연결고리로 작동한 것이다. 한국의 지방체육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대회를 유치하거나 시설을 짓는 수준이 아니라 지역 특색을 살린 생활체육·스포츠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 대학과 체육회, 지자체가 협력해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일자리와 창업을 지원하고 노년층의 참여를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체육은 의료비 절감에도 직접적인 효과를 낸다. 규칙적인 운동은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정신적 안정과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게 만든다. 이는 곧 공공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활동적 고령자(Active senior)’의 증가로 이어져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촉진한다. 지방체육의 활성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적 과제다. 지역에 뿌리내린 체육은 단순한 건강 증진을 넘어 인구정책, 복지정책, 경제정책이 교차하는 핵심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일본과 북유럽의 사례처럼 체육을 삶의 중심에 두는 정책적 상상력이야말로 인구절벽 시대 대한민국의 새로운 생존전략이 될 것이다.

[천자춘추] 사람 중심의 의정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이 일상의 결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 서 있다. 기술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 서로에게 말을 거는 방식,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조금씩 바꿔 놓고 있다. 경기도의회 역시 이러한 변화 앞에 앞으로의 의정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 AI는 목적이 아닌, 수단과 도구다. 그리고 그 수단이 닿아야 할 곳은 언제나 ‘사람’이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하루가 고스란히 닿아 있는 민주주의이며 도민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이고 작은 변화 하나에도 먼저 반응해야 하는 풀뿌리 정치다. 그래서 지방의회의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서 출발해야 한다. AI 혁신 또한 더 많은 주민을 이해하고 더욱 세심히 보듬기 위한 변화여야 한다. 사람 중심의 가치는 거창한 구호에서 오지 않는다. 주민의 삶을 지키겠다는 의회의 본령을 정직하게 수행하는 데서 시작된다. AI는 그 길을 좀 더 밝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껏 방대한 자료와 예산서를 사람의 힘으로 일일이 들여다보던 방식에 AI가 더해지면서 지방의회의 분석은 더 정확하고 깊어지고 있다. 복잡한 데이터 속에서 놓쳤던 빈틈을 찾아내고 조례와 법률이 충돌하기 전에 미리 짚어내는 일도 가능하다. AI는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더 깊고 현명하게 만드는 조용한 동반자가 된 셈이다. AI는 주민과 의회 사이의 거리도 새롭게 바꾸고 있다. 기술은 의회가 더 낮은 자세로, 더 넓은 마음으로 주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미처 알지 못했던 정책의 그늘과 작은 목소리들이 AI라는 창을 통해 드러나고 도민의 어려움을 더 빨리,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이는 곧 더 나은 정책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바탕이 된다. 기술의 편향과 디지털 격차가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지 않도록 AI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 지방의회의 책임 있는 판단과 민주적 감수성이 기술과 어우러질 때 풀뿌리 자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다. 붉은 말은 강한 생명력과 열정,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상징한다. 경기도의회도 변화의 파도 앞에서 멈추지 않겠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일의 진정한 힘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서 나온다. 경기도의회에 있어 그 방향은 언제나 ‘민생’이다. 붉은 말의 기운을 ‘민생을 향해 달리는 용기’로 삼아 주민의 삶을 더 가까이 이해하고 정책의 빈틈을 더 빠르게 찾아내는 ‘사람 중심 AI 의정’의 길이 다가오는 새해와 함께 열리길 기대한다.

[천자춘추] 위성 데이터가 여는 농업의 미래

올해 경기도가 연천군, ㈜새팜과 함께 추진한 ‘인공위성 기반 스마트농업 실증사업’이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 2026 혁신상으로 이어졌다. 이번 수상은 특정 기술 하나의 성과가 아니라 공공, 지자체, 민간 산업체가 함께 만든 농업혁신 생태계가 국제무대에서 인증받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농업은 기후변화, 노동력 감소, 생산비 증가라는 구조적 도전에 놓여 있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대응이 어렵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가 농업의 필수 기반시설로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위성 영상, 인공지능 분석, 현장 데이터를 결합한 새로운 농업 모델을 준비해 왔다. 이번에 CES 혁신상을 받은 ‘SaeFarm AI Satellite Farm Monitor’는 고해상도 농림위성(0.7m) 영상을 매일 분석해 농작물 생육 정보를 수집하고 이상징후를 조기에 탐지하는 기술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벼 품종 ‘연진’을 재배하는 연천군 168농가와 연천콩 단지 52농가에서 실증한 생육 데이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위성 기반 농업데이터로 축적됐고 이 데이터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고도화시키는 핵심이다. 현장의 데이터가 곧 세계 기술의 경쟁력이 된 사례다. 또 농업인이 별도 앱 설치 없이 카카오톡으로 이상 징후를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한 서비스는 기술의 접근성을 높이고 디지털 격차 해소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농일지 자동 기록, 생육변화 시각화, 수확량 예측 기능은 농업인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영농 계획의 정확성을 높였다. 기술이 농업인의 ‘일’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농업인의 ‘결정’을 더욱 신속하고 정밀하게 만든 것이다. 이번 CES 혁신상은 경기도농업기술원이 2022년부터 추진해 온 정밀농업 기반 구축 정책이 국제기준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농업 경쟁력은 품종이나 장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결합된 농업 의사결정 구조가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내년부터 2028년까지 ‘위성 기반 경기미 스마트 영농관리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인공지능 기반 수확량·생육 예측 모델을 더욱 정밀화하고 현장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표준화해 농업기술센터, 지자체, 기업이 함께 활용하는 개방형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데이터가 모이면 분석이 가능해지고 분석이 쌓이면 예측이 가능해지며 예측은 곧 경쟁력이 된다. 연천군 현장에서 출발한 이번 성과는 한국 농업의 미래가 어디에서 시작돼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앞으로도 농업인이 체감할 수 있는 기술, 국제 기준을 충족하는 기술을 만들며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를 선도해 나갈 것이다.

[천자춘추] 경쟁과 배려

누가 괴물을 만들었는가. 요즘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영화는 주인공 빅터와 피조물의 관계를 과학자와 실험체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으로 그리면서 생명을 만들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마지막에 괴물처럼 보이는 피조물보다 책임을 회피하고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더 괴물일 수 있다는 질문을 던지는데 창조자와 피조물, 강자와 약자,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권력구 조를 뒤집어 보며 누군가의 행동과 선택이 괴물성을 규정한다는 점을 관객에게 묻는 것이다. 최근 대형 배달플랫폼 기업 간 퀵커머스 경쟁이 가열돼 당일배송도 모자라 30분 이내 도착하는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품목도 다양해 공산품은 물론이고 신선식품이나 밀키트, 간편식 등 안 되는 게 없다. 과거 기억이 떠올라 흠칫 불안해진다. 1990년대 후반 미국과 2010년대 한국에서 펼쳐졌던 30분 이내 피자배달 이야기다. 과도한 배달시간의 압박으로 배달원들의 난폭운전에 따른 사망 사고, 노동환경의 악화로 크게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기억이 있다. 지금 국회에서는 새벽배송에 대한 여러 의견을 취합 중인 것 같다. 택배노조는 초심야 시간 배송제한을 주장하는데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의 초심야 시간대 배송을 금지하는 이유를 이 시간대가 근로자의생체리듬을 파괴하는 시간대이며 이로 인해 수명장애, 심혈관 질환, 암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고 했고 대안으로 배송시스템을 오전 5시 출근조와 오후 3시 출근조로 나누는 주간 연속 2교대 형태로 전환하고 심야의 노동의 연속성을 끊는 대신 낮시간 중심의 근무체계를 유지하자고 제안했다. 또 한편으로는 같은 근로자인 쿠팡택배 위탁 기사 모임인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새벽배송을 금지하면 야간 기사의 생계를 박탈하게 되고 택배산업의 자해행위라고 주장하며 새벽배송 근로자들이 오히려 새벽배송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수입도 더 좋고, 주간보다 차도 덜 막히며, 낮에 개인시간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업계의 의견은 새벽배송이 멈추면 우리 일상 모두가 멈출 것이라고 주장하고 관련 산업인 소상공인의 매출도 급감해 피해가 속출할 것이며 워킹맘의 일상이 멈추고 현실적으로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건지 그 속을 알기는 어렵지만 독점 플랫폼들이 언제부터 소상공인이나 소비자의 편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만 누구에게 편리한가보다 누구에게 해가 되는가를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모든 국민이 납득할 정답은 아니더라도 해답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한경쟁시대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해 나만 편하고 나만 돈 벌면 되는 괴물은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 경쟁보다 배려를 기대해본다.

[천자춘추] K-소비재 성공조건

K—콘텐츠의 확산과 함께 한국 소비재가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글로벌 소비 트렌드는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가치 중심 소비’가 확대되고 온라인 플랫폼 확산으로 브랜드 교체 속도는 빨라졌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의 기술력, 디자인, K—컬처가 결합한 K—소비재에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실제로 미국, 일본, 동남아 등 주요 시장에서 K—뷰티와 K—푸드의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글로벌 유통망에서도 한국 브랜드 전문관이 확대되는 추세다. 부천시 소재 A기업은 K—푸드를 중심으로 한 소비재 수출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과거 국내 시장 위주로 떡과 면류, 가정간편식(HMR) 제품을 생산했던 이 기업은 한류 확산 이후 해외에서 떡볶이·밀떡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며 미국 바이어의 요청으로 밀떡볶이 원산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미 FTA는 기업이 자율 발급할 수 있지만 실제 원산지증명서 작성·관리·사후검증 대응은 중소기업에 쉽지 않은 과정이다. 이 기업 역시 원산지 관리, 제조공정 분석, 원재료 소명 등 복잡한 절차에서 난관을 겪었다. 이때 경기지역FTA통상진흥센터의 컨설팅은 중요한 전환점이 됐고 특히 한미 FTA, 한—아세안 FTA 등을 적극 활용해 관세 부담을 줄이고 현지 인증·통관 절차를 사전에 대비하면서 시장 진입 속도를 높였다. 이 기업의 밀떡은 한류 드라마·예능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현지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었고 이제는 한미 FTA를 비롯해 아세안, 베트남, 호주 등으로 인증수출자를 확보하며 수출국이 멕시코, 독일, 카타르까지 확대됐다. 나아가 유럽과 중동시장 진출을 위해 할랄·유럽연합(EU )인증까지 취득하며 K—푸드 수출의 신뢰도를 높이며 수출 확대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류가 만든 기회가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수출 붐은 짧은 시간 수많은 기업을 해외로 뛰어들게 했지만 품질·인증 미흡으로 해외 신뢰를 잃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준비다. K—소비재의 상승기류는 지금이 절정이지만 그 파도를 오래 타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지역FTA통상진흥센터는 중소기업이 한류의 기회를 일시적 매출이 아니라 장기적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FTA 활용과 해외 인증, 시장조사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준비된 기업만이 한류 소비재의 상승기류를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다.

[천자춘추] 서울기상관측소, 100년과 미래

대한민국의 심장부, 서울 종로구 송월길 언덕 위에 자리한 서울기상관측소는 단순한 관측 시설을 넘어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의 하늘과 바람, 비와 눈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1907년 대한제국의 정부 산하 관측소로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서울기상관측소는 우리 민족의 근대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날씨의 기록을 이어왔다. 1913년 낙원동 시절을 거쳐 1932년 송월동 현재 위치에 정착한 서울기상관측소는 지금까지 변함없는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의 숨결을 헤아려 왔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85호’로, 2017년에는 세계기상기구(WMO)로부터 ‘100년 관측소’로 지정됐다. 100년 관측소는 100년 전 설립, 비활동 기간 10년 미만, 환경정보의 보존, 지속적인 자료 품질관리, 관측자료 공개 등 WMO의 촘촘한 기준을 모두 통과한 경우에만 선정되는 것으로 기상 분야의 유네스코 문화재라고 불린다. 하지만 서울기상관측소의 진정한 가치는 수치와 데이터에만 있지 않다. 송월동 언덕 위, 단풍나무와 벚나무 그늘 아래 흐르는 시간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진리를 일깨워 준다. 자연은 늘 변하고, 그 변화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다가올 또 다른 변화에 대비하는 일은 인류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잦아진 국지성 집중호우, 재난 수준의 가뭄, 예측을 벗어나는 폭염과 한파는 우리의 삶과 경제를 뒤흔들고 있으며 지난 세기 동안 서울이 겪은 극한의 날씨들은 서울기상관측소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후위기 시대, 과거와 현재의 기록들은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한 지혜로 승화돼야 하며 서울기상관측소의 100년 기록은 우리가 과거를 해석하고, 현재에 대응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서울기상관측소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하늘을 관측할 것이다. 하늘을 관찰하는 일은 곧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일이며 나아가 인류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기상청은 앞으로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한 세기 넘게 쌓인 소중한 기록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 정밀하고 신뢰성 높은 기후 예측 체계를 구축하며 과학과 역사, 전통과 미래를 연결해 기후위기라는 도전 과제에 맞설 것이다.

[천자춘추] 세계 철학의 본산 ‘파주’

언제부턴가 전통문화는 고리타분한 ‘노인문화’이고 현대문화는 화려한 멀티미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문화’라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았다. ‘전통’이 부지불식간에 부정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현상은 지역사회에서 더욱 심하다. 지역마다 조상 대대로 면면히 내려오는 고유한 습속(習俗)과 문화적 뿌리가 있지만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전통 문화유산이 사라져 가는 일이 빈번하고 문화적 성장 기반이 다른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 살다 보니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문화는 옛것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전통문화가 예부터 전해 오는 고유 문화를 말한다면 지금 이 시대의 문화는 전통을 기반으로 더 발전시키고 더 아름답게 가꿔 나가야 하는 창조된 문화다. ‘지역문화’는 지역 사람들 손에 의해 가꿔지고 다듬어진 문화를 말한다. 전통은 이 땅을 지킨 선조들이 만들었고 창조는 이 땅을 지킬 사람들이 만들어 나간다. 따라서 전통이 독창성에서 왔다면 창조는 다양성에서 온다. 독창성과 다양성이야말로 ‘지역문화’의 원동력이고 정체성을 지키는 에너지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을 ‘철학’이라 한다. 파주는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으로 대표되는 ‘파산학파’의 본산이고 우리나라 철학계를 대표하는 기호학파의 중심이다. 율곡, 우계, 구봉, 휴암, 남계 선생 등 기호 유학의 중심인물이 모두 파주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조선 성리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향교와 서원이 6개소에 이르고 동방 18현 중 여섯 분이 파주분 또는 파주를 거쳐 간 분들이다. 경기도내 서원에 주·배향된 123분 중 100여분이 기호 유학자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와 파주는 한국학의 중심뿐 아니라 동양철학, 나아가 ‘세계 철학의 본산’으로 재조명돼야 한다. 파주는 매년 율곡, 우계, 방촌문화제를 통해 위대한 선현들의 학문적 전통을 지켜 나가고 있지만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조적 문화를 고유 브랜드로 육성해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한 도시의 문화적 품격은 박물관, 공연장, 갤러리, 도서관을 통해 드러난다. 파주문화원이 ‘율곡문화진흥원’과 ‘시립박물관’ 설립을 서두르는 이유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전통문화 유산과 ‘헤이리 예술마을’, ‘출판도시’ 등과 연계한 대한민국 대표 문화도시의 탄생을 기대한다.

[천자춘추] 다문화장벽 허물 ‘레인스쿨’

최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레인스쿨 콘테스트’와 ‘국제 레인캠프’를 마치고 돌아왔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학생들이 빗물을 주제로 영상·포스터·발표 경연을 펼치는 현장은 뜨거운 에너지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빗물을 모아 정화하고 이를 스토리와 미디어로 표현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국적과 언어를 넘어 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바로 ‘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경기도가 떠올랐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다문화 가족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결혼이민자, 외국인 근로자, 이주민 자녀까지 포함하면 70만명이 넘고 다문화 학생은 이미 1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 중 상당수가 메콩지역 출신으로 모두 비와 함께 살아온 ‘몬순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같은 교실에서도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서로 어울리지 못하거나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레인스쿨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빗물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이다. 말이 조금 서툴러도 눈과 손으로 배우는 활동이기에 다문화 학생들에게 특히 큰 힘을 발휘한다. 빗물 실험, 영상 촬영, 포스터 제작 같은 참여형 수업은 언어 부담이 적고 재미가 있어 몰입도가 높다. 이 즐거움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세우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결한다. 다문화 학생들이 이런 활동을 좋아할 이유는 충분하다. 고향의 빗물 이야기와 전통 춤·노래를 발표에 담을 수 있고 한국 학생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문화적 코드여서 쉽게 어울릴 수 있다. 무엇보다 영상과 정보기술(IT) 활용은 어른들보다 오히려 학생들이 더 능숙하다. 스마트폰 촬영, 쇼츠 편집, 포스터 디자인은 이들의 강점이다. 참가자들이 만들어낼 스토리와 작품은 기존의 교육 방식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다. 다문화 학부모 역시 이러한 활동을 환영할 것이다. 아이가 언어 부담 없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하는 놀라움을 느낄 것이고 자신의 문화가 존중받는 경험을 하며 학교와 지역사회에 대한 소속감도 커질 것이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활동만큼 부모를 안심시키는 것은 없다. 우리도 레인스쿨을 시작하자. 몬순의 경험을 가진 다양한 가족이 모여 사는 경기도는 이 프로그램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지역이다. 비가 새로운 연결의 언어가 되고 학생들의 이야기가 솟아오르는 경기도를 기대한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천자춘추] 왜 시민의회가 필요한가

21세기 초부터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위기 현상이 심각해졌다. 세계화의 후과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대리전 성격의 전쟁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한 정치 변동으로 이어지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당, 국회 등이 불신받고 극우집단이 정치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와 정당정치가 위기에 처하면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고 일정한 단계에 오른 각국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실험이 시작됐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선거법 관련, 아이슬란드의 헌법제정시민의회, 프랑스의 기후위기 대응 시민의회 등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통칭 시민의회가 실험적으로 시작됐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제도화 단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노킹스데이 평화시위도 역대급 규모로 등장했다. 시민의회 성공 사례로 소개된 국가와 지역의 공통점은 민주주의 선진국 수준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진화하는 것이다. 물론 시민의회가 기존의 정당이나 의회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그 정치집단이 국민의 뜻에 미치지 못하거나 미흡한 경우 또는 국민을 기만하거나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 질책하거나 심지어 탄핵까지 한다. 한국에서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된 지 30여년이 됐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1991년 지방의회의원선거, 그리고 1995년 단체장선거가 실시됐다.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중단된 지방선거의 재개는 공간적인 구분으로서의 지역은 살아났지만 주체인 시민은 제대로 등장하지 못한 상태였다. 지방자치가 지역 유지와 관치 중심인 것은 한국 민주주의, 특히 지역정치와 지방자치의 취약성이다. 지방 소멸까지 진행 중이라 심각한 상태라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촛불혁명과 응원봉혁명을 거치며 투쟁으로 나섰고 국회를 통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었지만 내란 척결과 민주주의 안정적 궤도 진입은 만만치 않다. 국민주권의 실질화는 선거에 의존하는 정당 중심의 대의정치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고 취약한 한국 사회가 내란 청산과 대개혁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시민의 뜻과 힘이 모여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 시민의회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에서 시민의회를 준비하려 한다. 전국적인 각종 공론화위원회,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과 시민사회 100인위원회 등의 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진지한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천자춘추] 멈추어 보는 시간, 흐르는 마음

빠르게 흘러가는 생활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멈춤’을 경험할 수 있을까. 반대로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 흐름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지금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전시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유일하게 남긴 한 권의 사진첩에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그의 삶이 담긴 사진 속 인물과 장소들 속에서 ‘멈춰 있음’과 ‘흐르며 변화함’이라는 시간의 본질을 본다. 나혜석의 사진첩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정리된 연대기도 아니고 주제별로 분류된 기록물도 아니었다. 나혜석은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혹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 순간들을 붙잡아 두려 했던 것 같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왜 그 장면이 선택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무작위성 속에서 오히려 그의 마음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나혜석의 사진첩을 소개하는 섹션과 더불어 ‘가족’과 ‘여행’을 주제로 한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가족을 이야기하는 전시 섹션에서는 예술가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남긴 마음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임군홍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조용히 포착하며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집 안의 작은 숨결 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배운성은 자신만의 섬세한 시선과 감각적인 화면 구성으로 가족의 모습을 일상 속 감정과 분위기까지 담아냈다. 박수근은 투박하지만 따뜻한 붓질로 소박한 삶이 가진 품위와 희망을 그려냈다. 이중섭에게 가족은 언제나 마음 깊이 남아 있는 ‘그리움’이었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작품 속 선과 점이 더욱 절실하게 남아 있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가족은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마음의 자리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여행을 다룬 섹션에서는 예술가들이 낯선 공간을 통해 생각을 넓혀 가던 여정이 펼쳐진다. 나혜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먼 길을 떠났고 그 과정에서 배운성, 백남순, 서진달, 이응노, 이종우 같은 예술가들과 연결되며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또 다른 여성 예술가인 박래현과 천경자는 여행 속에서 만난 풍경과 감정을 작품에 담으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 갔다. 이들의 발걸음은 단순히 떠나는 행동이 아니라 삶이 계속 나아가기를 바라는 작은 용기였다. 미술관은 잠시 멈춤을 허락하는 장소다. 전시 관람을 마친 뒤에는 행궁동의 거리로 나가 보기 바란다. 골목의 바람, 작은 카페의 온도, 책방의 종이 냄새 속에서 마음이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앞으로도 작품이 머무는 공간을 넘어 기억과 경험이 계속 이어지는 살아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머무르고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천자춘추] 새로운 산업혁명 AI

최근 코스피 주가가 4천을 훌쩍 넘겼다. ‘5만 전자’ 삼성은 11만원을, 하이닉스는 최고가 60만원을 넘었다. 모두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으로서 큰 장을 열었고 우리 기업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방문에는 각국 정상 및 관료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가도 내한했다. 그중 시가 총액 세계 1위인 엔디비아의 젠슨 황도 내한했다. 엔디비아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래산업인 인공지능(AI)의 선두 주자다. 엔비디아는 공동협력으로 인연을 맺어온 네이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과의 협업을 선언했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관세 압박을 받아 수세에 몰렸으나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위기를 잘 극복했으며 또 다른 기회가 열린 것이다. AI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이다. 기존에 사람이 직접 코딩하던 것을 AI에서는 컴퓨터에게 모델을 스스로 배우도록 훈련한다. 지난 60여년간 세상을 지배하던 컴퓨터 산업은 AI와 가속컴퓨팅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은 AI에 영향을 받고 있다. 과거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였지만 AI는 도구가 아니라 실제로 일(작업)을 수행한다. 그래서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술산업이라 할 수 있다. AI는 하나의 산업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는 학습하지 않은 문제도 스스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기존 정보기술(IT)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새로운 컴퓨터 방식인 가속컴퓨팅은 기존 컴퓨터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 모델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흐름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소프트웨어, 풍부한 전문성과 인재, 깊이 있는 AI 기술력과 과학적 역량, 제조능력까지 두루 갖춘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로보틱스 산업의 선두 주자로 활약할 것이 분명하다.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시대가 바로 인공지능의 미래이며 이런 미래에서 한국은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그래픽처리장치(GPU) 및 AI 인프라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대기업의 선방이다. 그동안 우리는 관세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는 것 아닌가 했지만 위기는 곧 기회로 반전됐다. AI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 돼 오히려 국운 상승의 기회가 열리는 듯하다. 우리 중소기업도 바라만 보지 말고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이 분위기에 노를 힘차게 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관세전쟁의 위기(危機)를 반전과 도약으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機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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