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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책과 삶]파묻고, 태우고, 잊었다…쉽게 버린다는 가책까지
    [책과 삶]파묻고, 태우고, 잊었다…쉽게 버린다는 가책까지

    월드컵공원.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과 성산동 일대에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며 조성된 이곳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운영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폐쇄된 자리에 만들어졌다. 난지도는 산업화 시대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배출한 쓰레기를 받아내 거대한 쓰레기산을 쌓았다. 하루 트럭 300대가 오가며 쌓은 쓰레기산은 지상 90m 높이로 두 개의 봉분을 이뤘다. 그렇다면 그 많던 쓰레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허무한 답이지만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묻혀 있다. 1억t 이상의 쓰레기는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선 사라졌다. 가히 ‘쓰레기 기억상실증’(Waste Amnesia)의 시대다.책은 “쓰레기 처리에 관련된 제도와 기술 일체는 집단적 기억상실증과 정신 조작의 문화 장치이기도 하다”며 “쓰레기장은 소비 대중의 기억상실증을 고질화하고 소비주의적 일상에 쉽게 몰입하게끔 면죄부를 주는 장소”라고 말한다. 길바닥이 아닌 ‘쓰레기통’에 ...

    4시간 전

  • [책과 삶]저출생 대책, “청년의 마음을 얻는 일”
    [책과 삶]저출생 대책, “청년의 마음을 얻는 일”

    ‘대한민국 출산율 0.7명’. 초저출산 문제는 너무 많이 이야기되면서 알 만큼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구경제학자인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람들이 여전히 모르거나 오해하는 내용이 많다고 지적한다.<인구에서 인간으로>는 지난 16년간 한국의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인구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가 출산율 감소 원인과 저출산 대응 정책에 대해 심층 진단과 제언을 망라한 책이다.(최근에는 출생률·저출생이 쓰이지만, 책에서는 학술적 정의에 따라 사용) 서구의 경험과 연구에 빗댄 추론에 답답함을 느꼈던 저자가 한국적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실증적 근거를 한국의 사례와 데이터로부터 가져온 책에선 기존 통념과 다른 얘기들을 다양하게 제시한다.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에선 ‘결혼의 감소가 출산율 감소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서구에선 결혼한 여성의 출산율 감소가 출산율 하락의 주된 원인이었던 것과 다른 결론이었다. 특히 2012~20...

    4시간 전

  • [책과 삶]집단적 거부와 두려움을 비추는 거울, 괴물
    [책과 삶]집단적 거부와 두려움을 비추는 거울, 괴물

    괴물을 정의하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시체를 얽어 만든 ‘프랑켄슈타인’, 봉준호 감독의 한강 괴물, 민담의 도깨비… 예시부터가 제각각이다. 17세기 괴물에 관한 연구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괴물은 뒤죽박죽한 무리”로 본질상 정의를 거부한다고 말한다.저자는 ‘괴물다움’이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괴물을 ‘크고 추하고 상상이 가미된 존재’로 거칠게 말할 수는 있지만, 추함의 기준은 주관적으로 달라진다. 책 속 예시를 빌리자면, 심해를 연구하는 해양생물학자는 초롱아귀가 괴물이라는 생각에 반대할 것이다.반대로 괴물은 보는 자들이 무엇을 경계하고 배척하며 두려워했는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저자는 고대 신화 세계부터 21세기 현대 사회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괴물을 돌아본다. 동굴 벽화에 새겨진 반인반수 주술사, 신화 속 용과 반인반수, 영화 속 각종 ‘크리처’ 등 인간은 왜 끊임없이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냈을...

    4시간 전

  • [책과 삶]당신의 확신, 정의인가 광신인가
    [책과 삶]당신의 확신, 정의인가 광신인가

    갑작스러운 아들의 자살. 누구보다 비통할 아버지를 공권력은 되레 살인범으로 몰아갔다. 증거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을 것이라는, 편견과 광기에 사로잡힌 여론만 난무했다. 짜맞춰진 시나리오에 따라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지 5개월도 되지 않아 사형대에 올랐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는 팔다리를 강제로 늘리고 억지로 입안에 물을 들이붓는 고문을 받았다. 포박된 그의 몸은 사형집행관이 내리친 망치로 산산조각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버티면서 그는 자신이 무고함을 주장했고 자비를 구했다. “빨리 죽여달라”고. 1762년 3월10일 프랑스 남부도시 툴루즈에서 벌어진 장 칼라스 처형 사건이다.가톨릭이 국교였던 18세기 프랑스에서 개신교(위그노)는 오랜 박해를 받았다. 가톨릭 교세가 강했던 툴루즈에서 개신교 신자인 칼라스의 아들이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시민들 사이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아들을 개신교도인 아버지가 살해했다는 뜬소문과 광신적 편견이...

    4시간 전

  • [책과 삶]활주로에 내리지 못한 179명…끝나지 않은 기다림
    [책과 삶]활주로에 내리지 못한 179명…끝나지 않은 기다림

    12·3 불법계엄만으로도 이미 뒤숭숭했던 지난해 말, 제주항공 여객기는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무사 착륙하지 못했다. 계엄의 주범이 대통령직에서 탄핵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상은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참사 유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슬픔은 빠릅니다. 너무 빨라서 쉽게 잊힙니다.”(정우신 ‘무안과 슬픔’)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작가 40명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 각자 1편씩 시를 써 엮은 것이 이 책이다. 1982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수열, 이문재부터 문학을 전공한 유가족 친척(김남주), 방송작가인 유가족(김윤미)에 이른다.누군가는 잊었을 참사 사망자 수 ‘179’가 거듭 소환된다. 김명기는 여기에 제주 4·3사건 희생자 수 ‘214’를 더해 시 ‘이백십사백칠십구’를 썼다. 사고 현장이던 무안국제공항을 날아드는 새와, 지난 9월 새만금 신공항 취소 판결이 겹쳐지기도 한다. “무안이 새만금을 살려...

    4시간 전

  • [새책]커피 괴담 外
    [새책]커피 괴담 外

    커피 괴담온다 리쿠의 데뷔 30주년 기념 연작소설. 오래된 카페의 고요한 시간, 낯선 기운이 깃든 순간들 등 작가가 겪고 들은 이야기들이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독자를 서늘한 세계로 이끈다. 작가는 “내가 호러 체질의 작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1만8000원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났다폭넓은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신작 시집. 서사적 스토리텔링과 시적 비약이 공존한다. “우리는 참 가성비 없는 삶을 사는 거 같아 나의 본성은 하얄까 밤새 타이핑했는데 백지지 나만이 쓸 수 있는 걸 지은 것 같은데 귀에 익은 멜로디래.”(‘소비뇽’ 중) 김이듬 지음. 민음사. 1만3000원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현존하는 최고의 비평가’로 평가받는 제임스 우드의 에세이. 신형철은 작가에 대해 “그냥 잘 쓰고 싶은 게 아니라 바로 이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비평가, “나의 이상적...

    4시간 전

  • [책과 삶]인류 살아남게 한 부족주의…‘확장 리셋’하라
    [책과 삶]인류 살아남게 한 부족주의…‘확장 리셋’하라

    옥스퍼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쓴 <인간 본성의 역습>은 인간 본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유사 이래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향후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는 담대한 시도다. 40년간의 현장 연구와 데이터 축적·분석 작업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첫 대중서다.인류는 오랜 생물학적·문화적 진화 과정에서 ‘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라는 세 가지 본성(저자의 표현으로는 ‘편향’)을 물려받았다.순응주의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무작정 모방하는 성향”이다. 우리가 공동체나 국가의 관습과 의례를 별다른 의심 없이 수용하는 것은 순응주의적 본성 때문이다. 종교성은 “신과 혼령, 조상에 대한 관념을 습득하고 전파하는 성향”을 가리킨다. 부족주의는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거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등 소속집단에 대한 열정적 충성심”과 외부 집단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난다.진화 과정에서 얻게 된 본성 순응주...

    4시간 전

  • [책과 삶]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 그래도 출판사 한다고?
    [책과 삶]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 그래도 출판사 한다고?

    출판사 사명(社名)에는 회사의 사명(使命)이 담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래저래 사명(社名)을 만든 뒤 그럴싸한 의미를 짜맞추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사명을 찾아서>는 이렇게 만든 가상의 출판사 이름 60개와 가상의 출판사가 하는 일을 담았다.출판노동자인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무얼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회에서 책을 만드는 과정은 부산물일 뿐, 출판사는 그저 의미를 담은 사명 하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출판사를 만드는 일은 일종의 ‘별명 만들기’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출판사 등록만 돼 있고 책을 내지 않는 수많은 출판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출판인들이라면 모두 자신의 출판사를 차리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이름만 있는 출판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굳이 또 하나의 출판사를 만드는 것은 허튼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 출판사를 차리고 싶다면, 사명만 존재하는 가상의 출판사를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4시간 전

  • [금요일의 문장]행복한 삶은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
    [금요일의 문장]행복한 삶은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

    “나는 할머니와 엄마,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 상호의존과 나눔의 힘에 대해 배웠다. 내가 공동체에 매력을 느끼고, 그 안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꿈을 꾼 것은 제도적인 복지만큼 중요한 것이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행복한 삶은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삶으로 가르쳐주었다. 엄마와 할머니로부터 타인을 존중하고, 곁을 내어주는 법을,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며 사는 삶의 행복을 배웠다. 그래서 가족 안에 갇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엄마만 남은 김미자>, 사계절김중미 작가는 1988년부터 인천의 빈민촌이던 만석동에서 ‘기찻길옆공부방’을 열고 지역 운동을 해왔다. 200만부가 넘게 팔리며 많은 이들에게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펼쳐내 보인 <괭이부리말 아이들>엔 이런 만석동 이야기가 담겼다. 지금은 강화도로 터전을 옮긴 작가는 농촌 공동체를 꾸려가며 ‘기찻길옆작은학교’의 큰이모로 살고 있다. 언제나 더 낮은 곳을 찾아 공동체의 희망을 ...

    4시간 전

  • [그림책]인샬라, 잿빛 가자에서 색색의 꿈을 꿉니다
    [그림책]인샬라, 잿빛 가자에서 색색의 꿈을 꿉니다

    바닷가에서 즐겁게 놀던 아이가 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를 발견한다. 일상이 무너진 가자지구에서, 한 어린이가 친구를 만들고 싶어 보낸 편지다. 편지엔 전쟁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포연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삶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편지를 보낸 아이의 이름은 칼리드. 칼리드는 편지를 받을 친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칼리드는 축구와 수영 그리고 올리브 나무를 좋아한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가끔은 방에 꼭꼭 숨어 있어야 해서 공을 찰 수 없고, 모든 것이 모자라 수영을 할 수 없다고 아쉬워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올리브 나무를 베어버리는 ‘그들’이 있다고도 말한다.공습과 검문, 마음껏 뛰놀 수 없는 일상 속에서도 편지를 쓰는 아이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또렷하다. 문장들 사이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친구를 떠올리고, 희망을 말하려는 천진한 마음이 스며 있다. 칼리드는 머지않아 성스러운 사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고 평화를 향한 여행을 떠날 ...

    4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