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가장 긴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

동영상 설명, 서울한빛맹학교 한동현(18) 군은 '가장 긴 수능'을 치르는 고3 수험생 가운데 한 명이다
    • 기자, 김효정
    • 기자, BBC 코리아

매년 11월 수능 날은 긴장감이 가득하다. 수험생들을 위해 비행기 이착륙이 늦춰지고, 도심의 출근 시계도 느려진다. 늦은 오후 해가 지고 시험장을 마친 수험생들이 교문 밖에서 부모와 포옹하며 한숨을 돌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돌아간 시간에도 시험장을 지키는 조금 '특별한' 이들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 수험생이다. 이들은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밤 10시 가까이가 되어서야 시험을 마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보는 시험'

과거 수능 현장.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시각장애 수험생에게 커피 등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시각장애수험생들은 제2외국어까지 모두 응시할 경우 끝나는 시간은 오후 9시 48분으로, 거의 13시간동안 시험을 치르게 된다

수능 당일 시각장애 수험생들은 일반학생과 동일한 시험문제를 푼다. 차이점은 시험 운영 시간이 다르다는 것.

일반적으로 수험생들은 수능날 오전 8시 40분에 시험을 시작해 오후 5시 40분에 시험을 끝낸다. 수험생들은 선택 영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국어, 수학, 영어, 탐구(사회 혹은 과학), 제2외국어와 한자까지 합치면 약 200여 개의 문제를 푼다.

중증 시각장애인에게는 8시간의 시험을 치는 일반 수험생보다 1.7배 더 긴 시험시간이 주어진다. 제2외국어까지 모두 응시할 경우 끝나는 시간은 오후 9시 48분으로 거의 13시간동안 시험을 치르게 된다. 저녁 식사 없이 시험은 진행된다.

점자 시험지의 물리적 두께도 시험의 길이를 만든다. 모든 문장과 기호, 도형이 점자로 바뀌면서 한 과목의 문제지는 보통 6~9배 두꺼워진다.

점자로 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

사진 출처, BBC/이호수

사진 설명, 모든 문장과 기호, 도형이 점자로 바뀌면서 한 과목의 문제지는 보통 6~9배 두꺼워진다

올해 수능을 보는 서울한빛맹학교의 한동현(18) 군은 장시간 시험을 치르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까 많이 힘들고 피곤하고 힘이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이건 어떤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끊임없이 그 일정에 맞게 훈련하고 컨디션을 맞추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동현 군은 빛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선천적 전맹이다.

7일 BBC가 만난 동현 군의 손끝은 모의고사 기출집 점자책 위를 재빠르게 오갔다. 수능이 일주일도 남지 않아 체력과 컨디션 조절에 한창이라고 했다. 동현 군은 점자로 된 시험지와 음성지원 컴퓨터를 활용해 수능을 친다.

한빛맹학교 동급생 오정원(18) 군도 '늦은 오후가 가장 고비'라고 말했다.

"점심까지는 괜찮은데, 4~5시쯤 영어가 끝나고 한국사 들어가기 전후가 제일 힘들어요. 저녁 시간이 없잖아요. 평소라면 식사할 시간에 계속 문제를 풀다 보니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시험을 끝내면 보람과 성취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버팁니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시각장애 수험생이 111명으로 집계됐는데, 그중 12명이 이들처럼 점자로 시험을 치는 중증 시각장애 수험생이었다.

점판에 종이를 끼우고 작은 송곳처럼 생긴 점핀으로 점자를 찍는 손

사진 출처, BBC/이호수

사진 설명, 답을 적을 때에는 점판에 종이를 끼우고 작은 송곳처럼 생긴 점핀으로 점자를 찍는다. 시각장애인 수험생의 수능 현장은 긴장감 속에서 '점자 찍는 소리'가 공기를 채운다

동현 군은 언어영역이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일반 수험생의 국어영역 문제지가 16쪽이라면, 점자 문제지는 약 100쪽에 달한다. 음성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시각과 달리 음성 정보는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기억을 붙들고 가야 한다.

수리 영역도 만만치 않다. 손끝으로 점자로 바뀐 복잡한 그래프와 도표를 해석해야 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다. 과거에는 모든 수식을 암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2016학년도 수능부터는 점자정보단말기 사용이 가능해졌다.

동현 군은 "일반 학생들이 연필로 계산 과정을 적듯이, 저희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점자로 입력해서 계산을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수능을 6일 앞두고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수업을 듣고 있는 한빛맹학교 오정원 군

사진 출처, BBC/이호수

사진 설명, 한빛맹학교 오정원(18) 군이 수능을 6일 앞두고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수업을 듣고 있다

손끝과 청각에 초집중해야 하다 보니 피로도도 크다.

정원 군은 "손으로 점자를 읽고, 필요한 경우에는 음성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다 보니까 일반 학생들보다 피로도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2026학년도 수능을 앞두고 기출 문제를 풀어보고 있는 한동현 군과 오정현 군. 음성변환기를 활용해서 문제를 듣고 점자로 답을 표시하고 있다.

사진 출처, BBC/이호수

사진 설명, 2026학년도 수능을 앞두고 기출 문제를 풀어보고 있는 한동현 군과 오정현 군. 음성변환기를 활용해서 문제를 듣고 점자로 답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긴 공부시간과 시험 시간은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활용 가능한 교재와 강의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늘 아쉽다고 밝혔다.

일반 수험생들이 듣는 인기 교재나 온라인 강의는 이들에게 큰 벽이다. 점자 교재는 거의 없고, 음성 변환을 하려면 텍스트 파일이 필요한데 구하기 어렵다. 누군가 문제집을 일일이 타이핑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온라인 강의 또한 대부분 판서와 그래픽 중심으로 강사들이 설명을 하기에 음성만으로는 이해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점자로 된 EBS 교재를 받아들기까지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EBS 수능특강 교재는 수능 연계율이 50%에 달하는 핵심교재다.

정원 군은 "다른 (비장애인) 학생들은 EBS 교재를 1~3월에 받아서 1년 내내 공부한다"며 "저희는 점역 파일을 수능 얼마 안 남았을 때인 8~9월에 받았다"고 했다.

동현 군은 교재 접근성에 한계가 너무 많다고 했다.

"수능 90일도 안 남은 시점에야 완성되더라고요. 수능 관련 자료 출판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공부하는 내내 들었어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예비 소집이 실시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실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예비 소집이 실시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실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EBS 점자 수능 교재를 제작하는 교육부 산하 국립특수교육원은 "수능 방송교재가 책으로 발행되는 시점(1월, 5월)에 해당 교재의 PDF를 보급받아 제작"한다고 BBC에 말했다.

시각장애학생용 대체교과서 및 교수‧학습 지침, 점자 도서 제작 지침 등 관련 기준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각 교재를 제작하는 데 최소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시각장애 수험생의 학습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분권 형태로 나눠 제작해 제공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측은 이 문제는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사안이라며 "수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재를 제때 받아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버팀목은 가족'

어려움이 있지만 가족과 교사의 지지 속에서 시험 준비는 이어졌다.

정원 군에게 가장 큰 버팀목은 가족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앞을 볼 수 있었지만 11살 때부터 시력이 빠르게 저하돼 그 뒤로 2년 뒤에는 결국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됐다. 정원 군의 부모도 시각장애인이다.

정원 군은 당시 상황을 담담히 설명했다.

"처음에는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녹내장과 각막 혼탁이라는 병까지 발견이 됐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병이 진행되다 보니까 시신경이 손상되었고, 결국 실명하게 됐어요."

빠르게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마음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함께 방향을 바꾸지 않고 버텼다.

'그래도 계속 배워라. 꾸준히 하면 도와주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난다.'

정원 군은 그 말을 오래 붙잡아왔다고 한다.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은 제가 힘들어할 때 위로해주고 마음까지 살펴주셨어요. 친구들도 제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수능을 앞둔 시각장애인 고3학생들이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점자책과 점자정보단말기를 활용한다. 저시력 학생들의 경우는 고개를 숙이고 책을 가까이 보거나 확대경을 쓴다

사진 출처, BBC/이호수

사진 설명, 수능을 앞둔 시각장애인 고3학생들이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점자책과 점자정보단말기를 활용한다. 저시력 학생들의 경우는 고개를 숙이고 책을 가까이 보거나 확대경을 쓴다

정원 군은 수능을 '끈기'라고 표현했다.

"삶에서도 끈기 없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잖아요. 이 시간은 제 의지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장차 목회자를 꿈꾸고 있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절 교회에서 받은 위로 때문이었다. 지망하는 학과도 '신학'이다.

동현 군은 수능을 쳐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가 "지적 욕구를 채우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해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기술과 정책을 만들기를 꿈꾼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돼서 웹사이트 등 시각장애인 접근성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나중에는 자문도 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을 대변해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수능 끝나면 밀린 잠 자고 싶어요'

두 학생의 담임 강석주 교사는 학생들이 '아쉬움' 보다는 '완주'에 의의를 두기를 당부했다.

"점자를 읽는 건 손끝으로 계속 튀어나온 것을 따라가야 하는데, 이게 계속 마찰이 되니까 손이 꽤 아플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은 하루 동안 그걸 해냅니다. 정말 대단하죠."

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배운 걸 하루에 모두 쏟아내는 시험인데, 당일에 너무 자책하거나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이 준비한 만큼 다 풀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능이 인생의 다는 아니니까요."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귀가하는 동현군. 학교 내에서는 동선을 모두 익혀서 케인(흰지팡이)을 쓰지 않는다

사진 출처, 강석주

사진 설명,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귀가하는 동현군. 학교 내에서는 동선을 모두 익혀서 케인(흰지팡이)을 쓰지 않는다

이들이 수능이 끝난 뒤 하고 싶은 것은 일반 수험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동현 군은 "밀린 잠을 푹 자고, 하루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고 웃었다.

정원 군은 "잠을 푹 잔 뒤 친구들과 따뜻한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거든요. 다시 해보고 싶어요. 작곡도 배우고 싶고요."

수능을 앞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두 사람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동현아, 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좋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그걸 다 견디고 여기까지 온 너를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정원아, 지금까지 이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영상: 이호수